영성

성숙한 신앙 (32) 망덕에 관한 신앙인의 자세

정하권 몬시뇰(마산교구)
입력일 2000-10-29 수정일 2000-10-29 발행일 2000-10-29 제 222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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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 탐닉하면 ‘실망’ 
교만하고 경박하면 ‘과망’ 
영원 행복 바라는 망덕 없다면 매일의 십자가 지고갈 수 없어
신앙인은 망덕에 관하여 두가지 잘못을 피하고 망덕을 더욱 함양하여야 한다. 두 가지 잘못은 실망(失望)과 과망(過望)이다. 실망은 하느님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실망의 원인은 두가지 이유에서 올 수 있다. 그 첫째는 지상사물(地上事物)의 가치를 영원한 생명의 가치보다 더 크게 여기는 것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나 육신의 사욕에 탐닉하면 하느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거기에 부수되는 영적인 사물에 대하여 귀찮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희망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영적인 나태 또는 영적 원의의 결핍이라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영적 사물의 추구에 수반되는 희생을 두려워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은 영적 사물에 대하여 무능력한 자로 자인하여 낙담하는 것이다. 실망의 또 한가지 원인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이다. 신앙인이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니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너무나 크고 많아서 과연 하느님께서 내 죄를 용서하실 수 있겠는지 또는 용서하시겠는지 의심하고, 하느님의 정의로우심을 감안하면 나같은 죄인에게 선생(善生)과 선종(善終)을 허락하실 수 없고 따라서 영생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자포자기한다. 이런 경우에는 망덕을 거스르는 죄에다 신덕을 거스르는 죄를 겸하게 된다.

다른 한편 교만하고 경박한 신앙인은 과망의 잘못을 범하게 된다. 과망은 너무 지나치게 바란다는 뜻이 아니고, 충분한 근거도 없으 면서 턱없이 바란다는 뜻이다. 과망의 잘못은 일반적으로 교만에서 유래한다. 교만은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견주어 보는 태도이므로 교만한 인간은 하느님의 정의를 얕잡아 보면서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망자는 그가 충분히 회개하지 아니하여도 인자하신 하느님은 그를 용서하실 것으로 기대하거나 죄를 거듭하면서 개과천선을 미루거나 은총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영생을 얻을 것 으로 기대하거나 나는 정식으로 세례를 받았으니 이미 구원된 상태에 있으므로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틀림없이 영생을 얻는다고 자부한다. 실망이나 과망은 모든 신앙인이 수시로 경험하는 바이다. 성질이 덤덤하고 평균적인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신자에게는 차라리 망덕에 관한 유혹이 덜 하지만 성격이 섬세하고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열심한 신자들에게 망덕에 관한 위험이 종종 일어난다.

신앙인이 추구하는 영생은 우리 감각적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신덕이 약한 사람에게 견고한 망덕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경우에 신덕과 망덕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설교에서도 망덕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지만 망덕은 신덕과 애덕을 지탱하는 중요한 덕이다. 영원한 행복을 바라는 망덕이 없다면 신자가 당하는 매일의 십자가를 무슨 힘으로 감심으로 지고 갈 수 있겠는가.

정하권 몬시뇰(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