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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계십니까?] 오늘날에 대한 교회 선교사명 (4) 모든 희망을 거르스는 희망/정연혁 신부

정연혁 신부(수원교구장 비서)
입력일 2000-10-29 수정일 2000-10-29 발행일 2000-10-29 제 222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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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희망은 곧 신앙인의 희망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오늘날의 세상은 모든 면에서 변화가 심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이상을 가지기보다는,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현대의 물질 문명의 흐름은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 공학과 게놈 프로 젝트는 장수와 건강에 대해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죽을 인간에게 이런 것은 시한부의 약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물질문명이 인간의 문제에 대해 약속하는 희망은 삶의 구조를 완전히 꿰뚫고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미봉책일 따름입니다.

교회가 항구하게 지켜온 인류의 역사에 대한 자세는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것이었습니다. 창조 이후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도 하느님의 약속은 긍정적인 것이었고,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할 때에도 예언자들에게 맡기신 말씀들은 늘 희망에 찬 것들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다 준 것은 인간의 방법이 기대했던 희망을 채운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든 희망을 거스르는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희망이었습니다.

죽음을 통한 희생은 어느 시대에도 인간의 문제에 대해 누구라도 감히 제시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초월성과 영적인 가치를 알거나 믿지 못할 때에는 할 수 없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창조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고통과 어두움에 대해서 해 온 대답은 빠르고 무절제한 물질의 발전이 아니라, 절대자인 하느님께 대한 근본적인 신뢰에서 비롯되는 희망인 것 입니다. 즉, 희생과 사랑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우리의 기본 신앙이 인간의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물질 문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에게 선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유용하게 써야 한다고 가르 칩니다. 문제의 핵심은 물질은 인간의 목적이 절대 될 수 없고 오직 도구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모든 희망을 거스르는 희망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교회의 선교 사명입니다

정연혁 신부(수원교구장 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