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대희년을 배웁시다 (37) 순례하는 대희년의 삶

박영식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1999-12-19 수정일 1999-12-19 발행일 1999-12-19 제 218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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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는 하느님을 만나는 여정이자 계기
‘지상의 교회는 순례하는 교회’
신앙·희망·사랑을 쇄신하는 길
전통적으로 지상의 교회는 순례하는 교회로 여겨진다. 베드로와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가던 로마인들은 참회의 길을 걸으면서 순례의 중심지를 예루살렘 에서 로마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상징적으로 대표하던 모든 것을 이제 보편 교회의 표지요 중심지인 로마가 떠맡게 되었다.

순례는 성서적인 주제이며(히브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 축제는 「순례의 축제」라 불린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구약 시대에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듯이』(레위 25,10)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 그곳에서 기도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것이다. 「순례」는 거룩한 것과의 만남이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순례는 특별한 체험으로 여겨졌다. 순례는 하느님을 만나는 하나의 여정이요 계기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대희년 을 맞아 우리의 순교 성인성녀들을 더욱 공경하며 순교지의 순례를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거룩한 곳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묵상하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 가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내적인 여정으로서의 이 같은 순례 개념이 순례 시편들(120~134편) 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시편들은 어떤 자세로 순례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순례를 시작하는 시편 120편에서 시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 세상의 일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나는 평화를 미워하는 자들과 너무나 오래 지냈구나』(시편 120,6)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순례를 준비하는 그는 『「주님의 집으로 가세!」하고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노라』(시편 122,1)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평화를 찾는 것, 다시 말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 안에서 언제나 평화와 자비로움을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순례는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며, 그분의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의 길을 버리는 것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나의 길은 너희의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길을 따라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매 발걸음 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희년을 맞아 순례하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모든 신자들이 변화되고 쇄신 된 모습으로 원래의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나눔과 일체 감은 순례자로 하여금 마음의 새로운 희망과 치유된 영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하느님의 차원을 만나게 해주는 순례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인간에게 일상의 도식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살게 해준다.

마음의 회개는 성지에 도달한 다음에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 준비했던 그 모든 것과 그로 인한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순례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형제애를 갖게 되고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쇄신하게 된다. 지상을 순례하셨던 예수님 자신이 모든 순례의 깊은 의미를 보장해 주신다.

박영식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