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대희년을 배웁시다 (32)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박영식 요한 신부
입력일 1999-11-14 수정일 1999-11-14 발행일 1999-11-14 제 217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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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시련 이겨낼 수 있게 도움 청해
2000년 대희년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인간을 찾아 나서신』 그분 아들의 육화를 기념한다.

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아 나서시는가. 아담이 에덴동산의 나무들 사이에 자신을 숨겼듯이(창세 3, 8~10 참조)인간이 자신을 숨기며 그분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하느님의 원수가 타락시키도록 허용했고, 사탄은 인간 역시 신이고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인식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시킴으로써 인간을 기만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해 인간을 찾아 나서심으로써 인간을 점점 더 멀리 이탈시키는 악의 길을 포기하도록 인간에게 권하신다(「제삼천년기」 7항 참조).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혹 혹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라고 가르치신다. 우리가 청하는 것은 우리를 시험에서 구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험 혹은 시련은 인간 조건에 속하는 것이며 예수님마저도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셨고, 수난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부딪치셔야 했던 시험들을 이겨내셨다. 시험이란 인간적인 체험이다. 외부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이 있을 수 있고, 또 우리 자신이 시험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우리에게서 시험을 없애주시라는 것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이나 시련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시험을 이겨냄으로써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들아, 네가 주님을 섬기려면 스스로 시련에 대비하여라. 네 마음을 굳게 가져 동요하지 말아라(…) 실로 황금은 불 속에서 단련되고 사람은 굴욕의 화덕에서 단련되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시라 2, 1~5). 그러나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련이 부정적인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곧 시련으로 인해 받는 압력이 인간 편에서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능가하면, 시험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우리를 방어해 주실 것을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악의 길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악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이요 증오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악일 수 있으며, 죽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나는 인간이 「좋다」고 한다면 인간의 죽음이 어떻게 악일 수 있다는 말일까. 만일 존재하지 않는 것과 죽음, 그리고 증오가 악이라고 한다면, 증오 때문에 야기된 예수님의 죽음 보다 더욱 큰 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셨다. 예수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악에 노출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에 따르면 악한 자에게서 악의 뿌리가 나오고(5, 37 13, 19) 이 뿌리는 악한 충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려 하며, 그렇게 되면 이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12, 39)이라 불린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 안에 악의 뿌리를 자라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위험에서도 꼼짝하지 않을 만큼 확실한 안정성의 수준에 이미 도달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여정 중에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여정을 보호해 주실 것을 청하며 모든 악의 시련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박영식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