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작은 이야기] 수녀님의 선물 / 안순덕

안순덕(스텔라·부산 하단본당)
입력일 2001-02-04 수정일 2001-02-04 발행일 2001-02-04 제 223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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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다섯송이는 그날 이후에도 한동안 내 마음에 피어있었다.
철철이 온갖 들꽃들이 피어나는 부산 베네딕도 수녀원을 일년에 서너 차례는 찾는다. 이곳은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수녀원을 방문한 어느날.

로사리오 기도의 숲, 바람은 작은 나무들을 흔든다. 지난 여름 토끼풀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풀밭 둘레 둘레에 그리움처럼 길다랗게 피었던 백합이 눈에 삼삼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그 사이로 문득 수녀님 한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오래 전 빗 속의 수녀원에서 받았던 쓸쓸한 정감이 생각나 혼자 수녀원 뜰을 걸었다. 수녀원에 들어서자마자 도라지 꽃이 보랏빛과 흰빛으로 뒤섞여 별처럼 와르르 피어 있었고 왼편으로 파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파밭을 보며 불현듯 이해인 수녀님의 파꽃이란 시를 생각했다. 그도 이곳에서 서성거렸으리라. 그런데 파밭 사이사이 꽃대가 긴 노란 꽃이 마음을 당겨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수녀님 한분이 우산도 없이 도라지꽃을 따고 있었다. 제대에 꽂을 크고 색이 선명한 색을 고르느라 옷이 젖어있었다.

이꽃은 상사초예요. 개상사화라고도 하는데 수선화과에 속합니다. 잎이 봄에 나와 초여름에 없어져 꽃과 잎이 서로 못만나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상사초란 이름을 가졌대요라고 말한다. 그리곤 뜰을 함께 거닐며 여러 꽃들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우산을 받쳐 성당까지 함께 갔다가 수녀원을 막 나서려는데,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 수녀님은 도라지꽃 다섯 송이를 손에 황급히 쥐어주곤 장난스럽게 웃으며 성당 쪽으로 달려갔다.

수녀님께 받은 그 도라지꽃 다섯 송이는 그날 이후에도 한 동안 내 마음에 피어있었다. 그리고 그후로 목이 긴 슬픈 상사초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안순덕(스텔라·부산 하단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