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목체험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며 / 김영근 신부

김영근 신부 (하늘씨앗살이학교 교장·예수회)
입력일 2009-03-01 수정일 2009-03-01 발행일 2009-03-01 제 2637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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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동안 품에 품고 있으면 제 스스로 두꺼운 계란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무슨 움직임이 느껴져야 어미도 밖에서 껍질을 깰 것이 아닌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무 움직임이 없으니 죽은 건가, 산 건가. 무턱대고 밖에서 깨고 들어갈 수도 없질 않은가.

그러기를 길게는 수십 개월 짧게는 수 개월 기다렸는데 지난해 뜨거운 8월을 마감할 무렵 심상찮은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자원봉사 교사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나가 떨어졌는데 자기들끼리 어느 날 쑥떡쑥덕 하더니 밴드부 결성을 하겠다고 한다. ‘Fling Boys’. 아이들이 자기들이 만든 밴드부에 붙인 이름이다. 9월 말에 학교 행사가 있었는데 비록 앙코르곡을 준비하지 못했지만 멋진 연주와 노래실력을 보여주었다. 11월에는 내친 김에 외부의 어떤 행사에 참여해보겠다고 신청하는 용기를 내보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10월 들어서서 마음먹고 계란껍질 깨기 작업으로 들어갔다. 이름하여 ‘언어학습 3개월 프로젝트’. 교사들의 반발이 심했다. 아이들이 달성하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지구 환경 문제’란 큰 주제 속에서 각자 원하는 작은 주제들을 잡아,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고 또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3개월 후 12월 중하순 경에 발표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교사들의 반발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애꿎은 교사들만 애먹이는 작업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염려가 기우였음을 우리 모두는 알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선택한 주제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본인 스스로 찾아 모아 읽으며, 모르는 단어 문맥들을 찾고 물어 정리하는 것이었다. 3개월간의 과정을 돌아보니 지난 봄과 비교할 때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12월 20일 발표 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한 아이는 땅을 오염시키는 쓰레기 문제를 공부해 이미 환경기자가 된 양 여러 곳을 촬영한 것을 보여주며 원고도 없이 거침없이 약 15분간을 발표해 주었다. 사막화를 공부하여 발표한 또 한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깨달은 바를 들려달라는 갑작스런 질문에 거침없이 당장이라도 몽골과 중국에 가서 나무를 심을 것처럼 대단한 각오를 보여주었다. 또한 물의 위기를 공부하여 발표한 아이는 물의 오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많이 불쌍했나 보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존재의 내면이 열리면 제 스스로의 몸짓을 하게 된다. 존재의 내면이 열리기까지는 살을 맞대어 한동안 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살을 맞대어 품어 안기보다는 돈으로, 물질로 해결하려 한다. 아니 그것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격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물격이 자라고 있다. 물격으로 자라면 인격으로 돌아오기가 무척 어렵고 힘들고 더디다.

김영근 신부 (하늘씨앗살이학교 교장·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