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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23) 라파엘로 산치오의 ‘풀밭의 성 모자와 아기 세례자 요한’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9-01-04 수정일 200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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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습작 끝에 얻어낸 자연스러움”

각 인물들 확실한 데생에 의해 정교하게 표현

라파엘로, 소묘 중심의 로마-피렌체 화풍 창시

사랑스런 두 아기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고, 여인은 그윽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성모님과 아기 예수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다. 우리가 흔히 보아 왔던 이런 성화에 대해서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다.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형태가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평범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이룩한 가장 큰 공로이자 르네상스 회화가 달성한 위대한 업적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인공은 바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다.

작품의 구도는 세 개의 꼭지점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형태다. 위쪽의 꼭지점에는 성모님의 머리가 있고 오른쪽 꼭지점에는 성모님의 발이,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자 요한이 자리 잡고 있다. 세 사람의 자세는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관람자는 굳이 구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이토록 안정되고 평화롭게 보이는 데에는 삼각형 구도가 밑받침되고 있기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인물들 상호 간의 자연스러운 관계다. 성모님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었음직한 아기 예수를 양팔로 조심스럽게 받치고 있다. 엄마의 부축을 받고 있는 아기 예수는 몇 달 먼저 세상에 나온 덕분에 제법 의젓해 보이기까지 하는 세례자 요한이 들고 있는 십자가를 덥석 잡고 있다. 요한은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고 있으며, 아기 예수는 축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인물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가운데서도 분명 위계질서가 있어 보인다.

아이들을 자연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성모님은 한편으로는 아기를 보호하려는 듯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먼 훗날 이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한 단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개인적으로는 한 아기의 어머니이지만 공적으로는 죄 많은 인간을 위해 대신 돌아가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만인의 어머니이자 교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흐트러짐도 없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성모님의 모습 속에는 이 같은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들 세 인물이 자리를 잡고 있는 배경은 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로서 지평선 너머에는 호수가 평화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다. 공간처리 역시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우리는 이 같은 공간을 그리기 위하여 화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시행착오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각 인물들은 드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확실한 데생에 의해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이것이 바로 색채 중심의 베네치아 화풍과 대조를 이루는 소묘 중심의 로마-피렌체 화풍으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 화풍의 창시자다.

라파엘로는 이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습작을 남겼다. 아기 예수를 비롯하여 각 인물들의 자세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보았는가 하면 옷 주름 연습도 수 없이 하였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단숨에 그렸을 것만 같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흡사 명배우의 명연기가 피나는 연습을 통해 탄생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그가 피렌체에 도착한 지 2년 쯤 지난 1506년으로 나이는 스물세 살쯤 되었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대형 이벤트가 두 개쯤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고향을 떠났던 레오나르도가 돌아와서 미켈란젤로와 함께 시청 건물의 벽에 대형 벽화를 그리는 경합을 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오나르도가 현재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성모자와 성 안나라는 유명한 스케치 밑그림을 일반인에게 공개한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세기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물론 젊은 화가들에게 이들 대가들의 회화방식을 모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르비노라는 작은 도시에서 피렌체라는 르네상스 중심지로 유학을 온 라파엘로는 한낱 시골 청년에 불과할 뿐 감히 이들 대가들과 겨룬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피렌체에서 대가들의 화법을 자신의 회화에 적용시켜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았으며, 소시민들의 주문을 받아서 이 작품과 같은 작은 성모자상 그림들을 꾸준히 그려주었다.

이 시기에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자 상은 상당수에 이른다. 붙임성 있고 성실하였던 이 애송이 화가는 드디어 2년 후에는 동향 사람이자 로마의 성 베드도 성당의 설계자였던 브라만테에게 발탁되어 바티칸에 입성하여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된다.

바티칸에 입장하면 관람객을 위한 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띠는데 결국 두 곳을 가리킨다.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벽화가 있는 “시스티나 경당”이고, 다른 하나는 “라파엘로의 방”인데 바로 이들 방에 라파엘로의 벽화들이 남아 있다. 천재 화가란 때로 이 작품이 보여준 것처럼 평범함 속에 깊은 뜻을 담을 줄 아는 화가임을 라파엘로는 일찍이 보여준 셈이다.

고종희(마리아·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지난 성탄, 아기 예수 곁에서 가장 인기를 누린 조연을 꼽으라면? 천사 가브리엘을 비롯한 수많은 천사들이 아닐까 싶다. 이 천사들은 수많은 성미술 작품 중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은 장면에서 유독 많이 등장해왔다.

그렇다면 서양미술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천사는 누구일까? 단연 라파엘로의 작품 ‘시스티나의 마돈나’에 그려진 두 명의 아기 천사가 꼽힌다.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표정이 특징인 이 천사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화가 라파엘로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라파엘로는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일찍이 하늘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고귀한 재능과 무한한 부를 받은 한 사람’이라고 불린 바 있다. 그만큼 뛰어난 예술적 솜씨를 쏟아냈고 그에 따라 풍요로운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또 미술사는 그를 일컬어 고대의 지식과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결합해 르네상스 예술의 정수를 창조한 화가라로 기록한다.

라파엘로는 초기 활동 무렵부터 수많은 제단화와 더불어 성모의 모습을 많이 그린 작가로 알려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한 이후부터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담은 작품을 더욱 다채롭게 내놓았다. 때문에 그를 ‘성모 화가’라고 부르는 이들도 많다.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을 그린 작품은 이번 호에 소개된 작품 외에도 여러 점이 눈에 띈다. 그 중 ‘검은 방울새의 성모’는 지난해 10월,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타났다. 작품이 걸려있던 저택이 무너지면서 17조각으로 갈라졌던 이 작품은 10년간의 복원 작업을 통해 세월의 때와 미숙한 보수작업의 흔적을 씻어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된 ‘성모자와 아기 성요한’도 ‘풀밭의…’와 유사한 풍경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꽃피는 초원에 앉으려는 성모의 아름다움 덕분에 ‘아름다운 여정원사’라는 부제를 얻기도 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