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22) 조토 디 본도네의 '탄생'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8-12-21 수정일 200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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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

맑은 눈의 황소(현명함)와 다른 곳 보는 당나귀(무지) 비유적으로 묘사

예수님 탄생 충실히 재현… 수난과 죽음, 교회 설립을 상징적으로 표현

얼마 전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더니 남녀 대학생이 무리를 지어 앉아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큰소리로 떠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한마디 할 수도 있었겠지만 생일파티라는 것이 떠들썩함을 충분히 이해하게 했다. 사람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태어나는데 왜 그렇게 생일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조카가 5~6살 때 새해 달력에 제일 먼저 자기 생일을 표시하며 몇 번이나 생일을 강조해서 한참 웃은 기억이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로 아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기쁘고 축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생일이 즐겁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한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만한 나이인데도 생일에는 항상 마음이 들뜨면서 누군가의 축하를 받고 싶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초대라는 명목으로 같이 식사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왜 그럴까. 때때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하고 때로는 왜 좀 더 멋있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는지 한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막상 생일이 오면 자축하고 싶어질까. 생일이 7월인데 지금 벌써 생일에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을 하며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느라 머리를 굴려 보기도 한다.

12월은 예수께서 태어난 달이다. 그리스도교 교인에게만 즐거운 날이 아니라 무신론자, 타 종교인들에게까지 12월은 들뜨는 날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그리스도의 생일이지만 그분의 일생은 그렇게 소란스럽게 축하받을 만큼 멋있지 않았다. 차라리 참혹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나 한순간도 영화를 누려 보지 못했고 더구나 모함을 받아 33살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살다 죽었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의지의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일까? 아니면 신의 뜻일까? 언제나 의문이다.

예수의 생을 보면 분명 하느님의 계획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왔을 때 피하지 않았고 순명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의 계획’이란 말을 보통 사람에게 적용하면 ‘운명’이란 용어가 될 것이다.

흔히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노력하면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에는 분명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미묘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다복과 박복, 행과 불행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난과 죽음 그리고 교회의 설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탄생’을 보면 마리아가 당나귀와 황소가 있는 마구간에 마련된 초라한 나무 구유 위에서 낳은 아들 예수를 산파에게서 건네받고 있다(혹은 건네주고 있다). 마구간 밖의 하늘에는 천사가 예수 탄생을 알리며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 하며 찬양하고 있고 목자들은 놀라워하며 이 경이로운 장면을 보고 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나무로 된 구유는 예수가 훗날 짊어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게 될 십자가가 될 것이다. 황소와 당나귀는 예수가 탄생된 곳이 마구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요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깨어있는 자와 깨어있지 못한 자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황소는 맑은 눈을 크게 뜨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당나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황소는 현명함을, 당나귀는 무지를 의미한다.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는 결국 죄를 낳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친 군중은 악한 자가 아니라 무지한 자다. 양과 염소는 옆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목자라는 것을 의미적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검은 염소 한 마리가 흰 양들 사이에 끼어 있는 모습이 뭔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예수는 최후의 심판 날 “양은 오른쪽에, 염소는 왼쪽에 세울 것이다” 하면서 흰 양은 선을, 검은 염소는 악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조토의 그림에 표현된 양과 염소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최후의 심판으로 우리를 지옥과 천국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분은 교회 설립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다. ‘탄생’의 전체적인 배경이 되고 있는 바위는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징한다. 예수의 탄생이 교회가 된 것이다. 성탄절에 교회를 가야 될 이유를 조토가 보여주고 있다.

김현화(베로니카·숙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혹은 근현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미술관을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중세 시대 예술은 대부분 성당에서 더욱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중세시대 화가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은 더욱 크다.

조토는 중세미술의 마지막 시기를 넘어 초기 르네상스의 싹을 틔운 작가로 ‘쉽게 보는 교회미술 산책’에서도 스크로베니 소성당 벽화를 통해 만나본 바 있다. 그도 당대 유명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비롯해 많은 성당의 벽화와 제단화 등을 제작했다.

성당이 아닌 미술관 중 조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이 꼽힌다. 미술관 내 ‘13세기와 조토’ 전시실에서는 조토가 제단화로 그린 템페라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호에서 만나본 조토의 작품 ‘탄생’은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유럽의 대형 미술관들처럼 오랜 역사 등을 자랑하진 않지만, 동서고금과 지역을 막론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이 미술관은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에서 나온 예술을 한번에 보여주는 백과사전과 같은 공간이라고도 불린다. 전시 공간은 약 20만㎡ 규모로 중세미술만을 따로 전시하는 분관도 갖추고 있다. 기금을 통한 구입과 기증 등이 늘면서 현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330만점을 훌쩍 넘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림설명

조토, '탄생', 1320, 나무 위에 템페라, 45.1 x 43.8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