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소공동체 현장을 찾아서] 6. 매곡본당 초등부 소공동체 ‘두레’

이상희 기자
입력일 2008-12-14 수정일 200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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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성경공부 중심으로 운영

성경·스스로 만든 교재로 일주일에 한 번 진행

김장 나누기·홀몸 어른 돌보기 등 봉사도 앞장

평일 저녁 시간, 한 가정집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까지. 모이는 기준을 도통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아이들 10여 명이 모여 있는데도 조용하다.

잠시 후 모임이 시작됐다. 출석을 부르는 것도,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아이가 더듬더듬 성경구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답답할 법도 한데 누구 하나 핀잔을 주거나 몸을 움직이며 지루해하는 모습이 없다. 그저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아이가 읽어 내려가는 성경구절을 눈으로 따라 읽고 있을 뿐이다.

안양대리구 매곡본당(주임 강희재 신부) 초등부 어린이들의 소공동체 ‘두레’모임 모습이다. 두레는 매곡본당이 자체 개발한 새로운 형태의 초등부 소공동체 모임. 학년별 교리 교육 중심의 일반적인 주일학교 체제를 벗어나 지역별 성경 공부 중심의 소공동체 모임을 지향하고 있다.

지역별로 5~1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학년에 상관없이 한 두레를 이뤄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 모임을 갖는다. 모임시간은 대부분 학교나 학원 등 개인일정이 끝난 저녁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라 저녁 모임이 피곤하고 부담이 될 만도 한데 빠지는 일 거의 없이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모임에 임한다.

성경과 자체제작 두레 교재로 진행되는 모임은 어른들의 소공동체와 닮아 있었다. 성경을 읽고, 묵상을 바탕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뭇 진지함이 느껴졌다.

박경애(오틸리아) 교감은 “아이들이 두레 모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작했지만, 10개로 시작한 두레가 5년만에 두배로 늘어나 보람을 느낀다”며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에 적극적인 아이들의 성향상 어른 소공동체보다 더욱 잘 운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두레장, 햇순장, 밀알장 등 모임을 주도하는 어린이 사도들의 주도를 잘 따르며 성경 공부와 함께 교리를 배우고 있었다. 또한 주일학교를 운영하지 않는 탓에 따로 어린이미사가 없고 전체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공동행사가 적지만 두레별 활동을 통해 계절별 소풍, 홀몸어르신 찾아뵙기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몇몇 두레 아이들이 함께 김장을 담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다. 또한 소규모로 구성됐기 때문에 두레 아이들 각자에게 묵주기도나 연도 등을 가르칠 수 있었고, 그 결과 묵주기도성월 한 달간 1500단의 묵주기도를 바친 아이도 있었다.

이밖에도 본당 어린이들은 두레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이사악 두레장 박수정(바실리사·13)양은 “두레를 통해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함께 의견을 나누는 작업을 통해 토론하는 방법도 배우고 배려하는 마음도 키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한 다양한 학년들이 함께 모인 두레에 참석하면서 저학년 아이들은 고학년 언니ㆍ오빠들의 의젓한 행동을 거울삼아 또래보다 큰 사고를 할 수 있게 됐고, 형ㆍ누나들은 어린 동생들을 기다려주며 인내심과 배려하는 법을 익히게 된 것도 또다른 장점 중 하나다.

이런 장점들이 소문이 나면서 지역 내 비신자 학부모들의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 두레를 통해 적극적으로 변한 친구를 보고 자신의 아이를 마치 학원 보내듯 두레 모임에 참석시켰던 한 학부모가 결국 아이와 함께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게 된 경우도 생겼다.

본당 주임 강희재 신부는 “소공동체 모임이라 하면 흔히 어른들 위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린이들도 충분히 소공동체 모임을 할 수 있고 그 효과 또한 크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두레”라며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부 6학년과 중1·2학년들을 위한 두레와 입시로 힘들어하는 고교생들을 위한 효과적인 두레 방식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중·고등학생을 위한 두레도 안정적으로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