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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20) 이탈리아 화가 조토 디 본도네의 ‘최후의 심판’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8-11-23 수정일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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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귀 통과해 천국에 이르는 길?’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들의 천국·지옥행 묘사

하단부엔 마리아께 성당 봉헌하는 엔리코 그려넣어

며칠 전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박사 과정의 학생들과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학생이라고 하지만 박사 과정에 있으니 30대 초반에서 마흔살 정도의 나이에 아이를 하나 혹은 둘 둔 엄마들이다. 자연히 아이들 교육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엄청난 돈을 지불해 가며 사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아이가 명문대학에 입학하거나 의사나 변호사 등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제자들 말에 의하면 그런 간절한 소망은 요즈음 돌날 상차림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옛날에는 돌상 위에 (부를 상징하는) 돈, (장수를 상징하는) 실, (학문을 의미하는) 연필을 놓았지만 지금은 청진기, 컴퓨터 마우스, 법률책, 골프공 등 구체적으로 직업을 나타내는 물건을 놓는다고 한다. 아이가 청진기를 집으면 장래 의사가 될 것이고, 법률책을 집으면 변호사나 판사, 컴퓨터 마우스를 집으면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되어 엄청난 거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정말 놀랍다. 20~30년 전만 해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의 힘으로 생을 개척하는 강한 독립심이 미덕이었고, ‘청빈’이란 단어는 고결함과 숭고함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어떤 수단으로서든지 일단 부자만 되면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면,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아파트의 면적은 어느 정도인지’, 심지어 아파트 층수를 묻기도 한다. 인기 층과 비인기 층의 가격 차이 때문인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 가벼운 식사나 차를 마실 때도 세계경제사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고, 대화의 마무리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손해를 보았거나 혹은 이윤을 얻었다는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끝난다. 돈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허공을 맴돌 뿐이다. 돈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죽어서도 천국행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처럼 돈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돈이 현세에서의 행복뿐 아니라 사후에서의 행복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은 이미 오래전 1300년대에도 팽배해 있었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1305년에 파도바에 있는 아레나 소성당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아레나 소성당은 그 당시 베네치아 근처 파도바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거금을 헌납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조토는 소성당의 좌우 벽면에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 마주선 벽면에는 ‘최후의 심판’을 재현하였다.

‘최후의 심판’에서 그리스도는 화면 중앙의 원 안에 거룩하게 앉아 있고 원 둘레에는 천사들이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불고 있다. 예수의 양 옆에는 열두 사도들이 근엄하게 앉아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판의 동요를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 사람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옷을 입고 질서정연하게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고, 왼쪽에서는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지옥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악인이 지옥에 가고, 선인이 천국에 가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과연 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인지 악과 선에 대한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리와 창녀가 너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세리라고 하면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며 세금을 거둔 냉혹한 사람이고, 창녀는 사회를 부패시키는 비도덕적인 인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천국으로 들어간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세상을 속이고 거짓말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에 엄청난 거금을 헌금한다면…?

조토는 ‘최후의 심판’에 부로서 천국행을 약속받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아레나 소성당의 건축 기금을 헌금한 엔리코이다. 엔리코는 아버지 때부터 횡포가 대단했던 고리대금업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엔리코는 자신의 악행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교회에 거금을 헌금함으로써 천국행 티켓을 보장받고 싶어 했고 조토는 이것을 가시적으로 표현하였다.

‘최후의 심판’에서 엔리코는 무릎을 끓고 두명의 천사 보좌관과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오른손으로 이 소성당을 바치고 있고, 왼손은 마리아가 내미는 손을 잡을 듯이 내밀고 있다. 소성당의 입구를 잡고 있는 오른손은 엔리코가 천국의 문 앞에 있음을 암시하고, 마리아의 손을 잡으려는 듯한 왼손은 그가 천국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을 그린 조토 역시 고리대금에도 손대어 빚을 진 사람이 부채를 갚지 못하면 그들의 남은 재산을 인정사정없이 거둬들여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역시 ‘최후의 심판’의 엔리코처럼 부로써 천국을 약속받고 싶지 않았을까.

김현화(베로니카, 숙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스크로베니 소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은 조토의 ‘유다의 입맞춤’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언급된 바 있다.

‘아레나 소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은 파도바의 갑부였던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아버지 레지날도의 속죄를 위해 봉헌했다. 성당은 길이 8.5m, 폭 2.4m, 높이 12.8m 규모로 자그마하지만, 온통 귀중한 벽화로 장식된 소위 보석상자 같은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당 벽과 천장 등에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각 작품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의 일생을 비롯해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에 관한 신학적 개념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조토는 특히 작품 중 ‘최후의 심판’ 중앙 부분에 성모 마리아에게 성당 모형을 봉헌하는 엔리코를 그려 넣었다.

중세 시대 작품에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인들에 비해 인간의 형상을 훨씬 작게 나타났으나, 조토는 이 작품에서 엔리코와 성모 마리아를 거의 같은 크기로 그려놓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바로 작품의 주문자. 조토가 이러한 그림을 그린 이후 의뢰자들이 미술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관행들은 신 중심의 경향이 강했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로의 이전하는 시대적 변화를 엿보게 한다.

중세를 넘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출발점에 서 있었던 조토는 종교성과 인간성을 조화시킨, 보다 인본주의적인 성향의 예술을 선보였다. 아울러 조토 이후 그려지는 작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중세의 작품 안에서처럼 인간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인간들의 옆에 다가와 인간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바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