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16) 조르주 루오의 ‘성안(聖顔)’

주정아
입력일 2008-08-24 수정일 2008-08-24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무거운 짐진 자 모두 나에게 오너라”

예수 얼굴 새겨진 베로니카 수건 회화로 재현

수난 당한 그리스도 통해 하느님의 사랑 표현

대학 1학년 때 영세를 받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 세례명이었다. 가급적 예쁜 이름을 정하고 싶었는데 성녀에 관해 잘 몰랐고, 알고 있었던 몇몇 이름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남들처럼 나와 동일한 생일날에 태어난 성녀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수녀님이 보여주는 책자를 펼쳤다. 그런데 내 생일날에는 성녀가 없었고, 그 전날에 태어난 성녀가 ‘베로니카’였다.

베로니카라는 이름이 그 당시에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받아들일만 한 것 같아 결정하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 당시는 물론이고 몇 년 동안 ‘베로니카’가 어떤 성녀인지 알지 못했다. 신부님의 배려로 영세를 받기는 했지만 전혀 하느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궁금증으로 시작한 교리공부였기에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 등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벅찼다. 그런 상태였으니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기까지는 세례를 받고나서도 몇 년 세월이 더 필요했었다.

처음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베로니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내 세례명이 베로니카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스럽게 사형장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소녀의 이름이 나에게 칭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파리 유학시절 프랑스인들이 ‘현화’ 발음이 너무 어려워 ‘베로니카’ (프랑스어 발음으로 ‘베로니크’)로 나를 불렀다. 거기에서 완벽하게 베로니카가 되어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현화’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제는 ‘현화’ 뒤에 선생님까지 붙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이미지와 ‘베로니카’가 어울린다고 해서 무척 민망해 하면서도 마음으로 은근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난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랑을 할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 무척 이기적이고 주변 눈치를 살피고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에 슬그머니 나 자신을 맡기는 편이다.

힘들고 지친 누군가에게, 특히 죄인으로서 모두의 야유와 손가락질을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얼굴을 닦아줄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단연코 아닌 것 같다. 누구나 마음으로 동정심과 슬픔, 연민을 느낄 수는 있지만 주변의 시선을 누르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사랑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베로니카의 행동은 사랑이 용기와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이라 하겠다.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 1958)는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베로니카의 수건을 회화로 재현하였다. 루오의 ‘성안(聖顔)’에서 예수는 두려움에 가득 찬 큰 눈을 뜨고 마치 로마 군인의 채찍질에 의해 상처받은 듯 거친 붓 터치와 원색의 색채로 할퀴어져 있다. 예수의 얼굴 어디에도 절대적인 권능과 위엄을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예수는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다. 베로니카의 수건 속에 있는 얼굴 저변에는 능욕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만 했던 그리스도의 고독과 불안, 두려움이 겹쳐지고 있다.

루오는 수난 중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고 인간적인 깊은 연민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루오는 패자의 흐느낌과 승자의 오만함 모두가 십자가의 그리스도 발밑에 무릎을 꿇는 겸손과 겸허의 감동을 추구하였다. 그러기에 루오에게 예수는 항상 수난의 그리스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배고픈 자만이 진정으로 배고픈 자를 이해할 수 있고, 눈물 흘려 본 적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눈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수난은 무거운 짐을 진 힘들고 고된 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인 최대치의 사랑을 의미한다. 루오는 수난 중의 그리스도를 통해 광대, 창녀 등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어둠 속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가 권력, 돈, 명예 등을 약속하는 전지전능한 절대 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는 ‘사랑’의 실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루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사랑’ 그 자체이다. 베로니카는 ‘사랑’이 믿음, 확신, 용기의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루오는 미술사의 큰 맥락 안에서 보면 종교 화가라기보다 야수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20세기 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실험적인 화가다. 그러나 격정적인 색채와 거침없는 붓 터치, 짓이겨진 듯이 왜곡된 표현적인 형태가 현대미술의 조형적 탐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미술을 위한 미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루오는 화가로서 자신의 재능 전부를 하느님께 바치기를 원했다. 루오는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종교적 믿음, 신념과 결합시켜 죽음조차 순종으로 기꺼이 받아들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현대미술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김현화(베로니카·숙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80세가 된 조르주 루오에게 그레고리오 대교황 훈장을 수여했다. 교황 훈장은 교회에 공헌한 평신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훈장 수여는 루오의 예술 세계에서 짙게 드러나는 종교적 메시지를 교회가 인정하는 모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미술평론가들은 루오를 명백히 종교미술 화가로 일컫진 않는다. 그는 교리나 복음의 내용을 직접적인 주제로 해서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메시지를 그 시대의 살아있는 상징들을 통해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오는 20세기 화가 중 종교적 색채를 가장 짙게 뿜어낸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그는 특히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전한 바 있다. 이번 호에 소개된 ‘성안(그리스도의 얼굴)’을 비롯해 예수의 얼굴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많이 그린 것도 루오 자신의 소망을 잘 드러낸 모습이다.

지난 2006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영혼의 자유를 지친 화가’를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렸었다. 조르주 루오의 유품 15점과 서적, 석판화 연작 ‘미세레레(Miserere)’ 전작을 포함한 회화작품 240점을 선보인 이 전시회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마련된 대규모 루오전이었다. 특히 전시회는 루오의 초기에서 말년까지의 작품 제작 기법과 색채, 테마에 의한 접근방법 등의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큰 관심을 모았다.

H.마티스, P.피카소 등과 함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루오는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엘리도로네와 G.모로를 사사했다. 또 유년 시절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견습공으로도 일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경험은 굵고 단순한 선을 가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평가된다.

그림설명

조르주 루오의 '성안(聖顔)', 1933, 캔버스에 유채, 91 x 65cm,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주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