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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12. 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입력일 2008-04-06 수정일 200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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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배려하는 상생적 가치관 지녀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

최근 환경보건학적으로 우려스런 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만두에서 농약이 검출되어 한바탕 원인 규명을 위한 소동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걷지도 못하는 광우병 의심소가 도축장에서 눈속임 검역을 거쳐 학교 급식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식수로 사용하는 대구 매곡정수장 상류서 페놀이 검출되었고, 웰빙 곡물차에서는 납과 비소 등 유해 중금속이 검출되었으며, 과자봉지에서는 기름에 튀긴 생쥐의 신체 부위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 대부분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되었고, 한국에 수입된 미국산 냉동 야채식품에서 또 죽은 생쥐가 나왔다.

최근에 분출된 이런 사례가 어디 전부이겠는가? 마음먹고 조사하자고 달려들면, 환경보건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현대 사회의 먹거리치고 환경적으로 정말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사정이 이 지경이니 애와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암과 같은 환경성 질환에 노출되는 빈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보건 외적인 환경문제도 이에 못지 않다.

석유와 철 등 각종 자원 가격이 폭등하여 최고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대체 에탄올에너지 생산과 관련해서 옥수수와 밀, 쌀 값 등도 폭등했으며,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온난화는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물 종의 다양성도 인간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약화되고 있고, 생태계도 계속 사회 확장으로 잠식당하거나 훼손되고 있다.

이렇게 환경 관련 위기 증후가 보다 빈번해지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현대 문명사회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인류 스스로 변화를 도모하거나 아니면 자연의 역습과 같은 형태로 변화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나은 방도는 대재앙을 겪기에 앞서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촌 인류가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먼저 그런 사회는 동료 사회 구성원에 대해서는 물론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자세까지 달라야 한다. 이에 그런 사회의 이념과 정치경제, 그리고 사회제도 등에 대한 상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서 우주적 존재론과 자연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신과 자연이 구분되어 있고, 자연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 즉 돈벌이의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 사회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존재의 차원에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보은으로 자연을 배려하는 상생적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정의가 사회와 자연의 영역으로 물 흐르듯 구현되어야 한다. 사회적 혜택의 차원에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존엄한 존재로서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하고, 그런 혜택을 누리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환경적 부담도 공정하게 분배되어서 자연에 대한 활용이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정의는 사회제도의 규제적 규범이어야 한다.

정치는 형식에 머물 수 있는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 참여 민주주의, 그리고 생태 민주주의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과거 군주와 귀족을 위한 정치가 평민과 여성 대표를 의회에 진출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것처럼, 의회에 미래세대 인류의 대표자와 생물 종의 인간 대리인이 의결권을 갖고 참석하는 사회가 도래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는 더욱 중요하다. 현재 산업 자본주의 경제는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과학기술에 의해 환경오염을 저감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인간 경제는 자연 경제의 하위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가늠하면서 질적 행복이 중시되는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 물론 몇 차례의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되겠지만, 지속 가능한 새 사회를 보다 빠르게 도모하는 것이 미래세대와 자연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가 될 것임을 자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면희 교수(프란치스코.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