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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4.인공 생명체 탄생의 양면성

입력일 2008-02-03 수정일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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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관점서 과학기술 평가돼야

1997년 새해 초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세상을 자지러지게 만든 논문 한편이 실렸다.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언 윌머트 박사팀이 체세포 핵이전 기법에 의해 돌리양을 복제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기사였다. 이 논문이 갖는 의미는 동일한 기법을 채택하여 인간 복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1년 초에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파악하는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미국에서 완료되었다는 기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역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4일 ‘사이언스’에 또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 논문이 게재되었다. 인공 생명체의 출현 가능성을 담은 것이었다.

게놈은 ‘유전정보의 전달자’인 유전자와 ‘유전자를 담는 용기’인 염색체의 합성어로서 통상 생물의 생로병사와 연관된 유전정보 일반을 뜻한다. 이때 유전자의 비밀을 간직한 DNA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경우 대략 31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서열구조를 알아낸다는 것은, 예컨대 매우 복잡한 기계 부품의 위치와 명칭을 밝히는 것과 같다. 후속 조치로 그 역할까지 파헤칠 때 인간 생명체의 설계도와 기능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된다.

손쉬운 연구 방법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 때 토막을 내어 번호를 붙인 뒤 다시 순서대로 잇는 것처럼, 효소를 이용하여 토막을 내고 연결점을 찾아 다시 붙이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크레이그 벤터 연구팀은 58만2900여 개로 구성된 박테리아 DNA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것은 성병을 일으키는 것인데, 전염성을 갖는 것만 제거하고 효모를 이용하여 다시 결합하는 방식으로 실험실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공 DNA 합성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이런 게놈을 살아있는 세포에 주입해 활동하게 만들면 인간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왜 과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일까? 명분은 불치병과 암을 치료하고, 수명까지도 연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과학의 분리주의 방법론은 애초 설정한 목표 달성에 다가갈 수 있지만, 미처 예기치 못한 다른 관계적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 살포가 어떤 제초제에도 끄떡없는 슈퍼잡초를 부산물로 만들어냈고, 몸집을 키우고자 의도된 36배 크기의 슈퍼연어는 흉측한 기형 몰골로 실험실서 폐기되었으며, 돌리양은 평균 연령의 절반에 해당하는 6년만에 사망했다. 이것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사례가 있다.

둘째, 유전적 우열사회를 조성할 수 있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게놈 프로젝트를 선도한 학자이고, 그는 1998년 국책연구기관서 뛰쳐나와 퍼킨 앨머사와 함께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하였으며, 2002년에는 이 회사 사장도 박차고 나와서 자신만이 주도하는,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차렸다. 왜 이런 행보를 취한 것일까? 한 마디로 독점적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미 그는 2002년에 향후 병원서 신생아를 맞이한 부모가 아이의 유전정보를 담은 CD 한 장씩을 들고 퇴원수속을 받을 것이라고 공표한 바 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당시 한 장에 우리 돈 8억6000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로 추정되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잠재적 질병 유전자를 제거했거나 또는 똑똑한 유전자를 주입한 맞춤형 아이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몰론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결국 열성과 우성 유전자를 지닌 유전적 양극화 사회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생명에 대한 조작은 생명에 대한 경시로 이행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계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과학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잘못 쓰면 독이 된다. 현재 생명공학이 이런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윤리적 차원에서 과학의 내용을 시민이 평가하고 제어하는 과학기술 민주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한면희(프란치스코·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