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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1.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

입력일 2008-01-13 수정일 20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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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너지 순환관계 이해해야

생명을 이해하는 견해가 여러 가지로 조성되어 있다. 이때 어떤 생명관을 갖느냐에 따라 생명에 다가가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바른 생명관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문명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면서, 마침내 생명마저도 주된 재료로 삼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지구, 사회를 파악하고자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조망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전체를 분리해서 보느냐 아니면 관계적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서양에서는 분리주의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고대에서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선창했고, 근대에서는 뉴턴이 기치를 들었으며 그리고 현재는 생명공학이 주도하고 있다. 전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단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겨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 소립자로 분리해서 접근하고 있다. 다만 인식적 편의를 위한 분류가 어느덧 존재적 차원의 분리로 이행하게 되면, 장차 문제를 초래할 소지가 발생하게 된다.

순자는 물과 불은 기가 있지만 생명이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이 있지만 지각을 못하고, 금수는 지각을 할 수 있지만 이성적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람은 기가 있고, 생명이 있고, 지각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이성적 능력도 구비하고 있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순자가 피력한 전통적 견해에 존재론적 분리주의가 결합되면, 사태가 일파만파로 잘못 번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생명에 대한 분리주의 이해가 그렇다.

생명공학은 대체로 존재론적 분리주의 생명관을 갖고 있다. 이 경우 가장 존귀한 인간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 이외의 각종 생명체를 도구로 삼아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하면서 조작을 일삼는다. 예컨대 농작물에 특정 농약의 내성을 지닌 박테리아 유전자를 덧붙이고, 연어에 규모를 키우는 유전자를 주입시켜서 슈퍼연어로 만들고자 하며,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시킨 쥐를 다반사로 만들어서 상품화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 생명의 씨앗인 수정란 복제는 물론 배아의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각종 질환을 고치려 하고 있다.

마침내 생각함에 있어서의 생명체 간의 차이를 현실에서는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론적 차별로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존귀한 인간 생명을 위해 무가치하거나 덜 가치있는 다른 생명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의 분리주의적 기획은 길게 보면 결코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GMO 식품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다수의 사례가 등장하고 있고, 자연에서는 어떤 제초제도 듣지 않는 슈퍼잡초가 나타나고 있으며, 36배 크기의 슈퍼연어는 헤엄도 치지 못하면서 몰골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기형 형태로 나타나서 실험실 수족관서 폐기된 적이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자연이나 사회, 생명에 대한 다른 이해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기적 관계주의 이해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는 전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실재하는 관계성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분리하면 지구나 사회, 생명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예컨대 태양과 흙, 대기, 바람, 물은 생명의 기반이고, 여기에 초록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산소를 부산물로 배출하면서 스스로를 탄수화물로 키우고, 이것의 일부는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며, 초식동물의 일부는 육식동물의 식량이 된다. 물론 인간은 산소 호흡을 하면서 잡식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생물학적 시한 종료와 더불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다시 박테리아가 분해하여 생명의 기반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렇게 자연에서는 생존을 위해 먹이로 삼는 침탈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생명 에너지의 순환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인간이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역행하는 구조적 행위를 지속한다면, 환경재난은 생명위기로 증폭되면서 인류 문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시기다.

한면희(프란치스코·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