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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교회가 간다Ⅱ] 51.카자흐스탄 (5)고려인과 한인공동체의 신앙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7-07-22 수정일 200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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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이주 아픔딛고 복음화 겨자씨로

“신앙 알리고 나누는 것이 ‘보은’의 길”

복지시설과 결연 맺어 정기적 후원도

하늘을 향해 두팔을 휘저으며 절규하는 모습이 캔버스 한폭 가득하다. 구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차디찬 허허벌판에 내던져져 추위와 배고픔에 처절하게 맞선 한인들의 모습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7월 19일까지 열린 ‘카레이스키’展에서는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벌판 등지로 강제이주된 한인역사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고려인들이 짐짝처럼 화물열차에 실려 빈사의 땅에 버려지다시피 한 해로부터 꼭 70년이 지났다. 당시 한인들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땅굴을 팠고, 살아남기 위해 숟가락과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땅을 일궜다. 그 서러움의 최초 정착지가 바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쉬토베 지역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척박한 벌판을 농토로 가꿨다. 또 민족문화에 대한 끈질긴 애착과 지성을 바탕으로 카자흐 내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나는 카자흐스탄인이다”

현재까지도 카자흐에는 고려인과 그 후손 1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 전체 인구의 9번째를 차지하는 숫자다. 고려인들과의 만남에서 기자는 이들이 품고 있는 스스로의 정체성이 가장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단지 ‘고려인’ ‘카자흐스탄 국민’이었다. 아직 생존해있는 강제이주 1세대들은 모두 함경도며 전라도며 자신들의 고향을 기억하고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 나는 카자흐스탄인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과 같이 현재의 한국인을 뿌리가 같은 형제쯤으로 인식한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알마티 삼위일체주교좌성당 안에서의 고려인들 모습은 더욱 활기찬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주일이면 평균 50여 명의 고려인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한다. 또 매주 기도시간을 겸한 친교시간도 갖는다. 이 시간이면 고려인 신자들은 대부분 빠짐없이 모여 향긋한 차 한잔씩을 마주하고 한주간 살아온 다채로운 생활 이야기와 옛 추억들을 풀어낸다. 또 이 모임을 통해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한국관구와의 인연도 이어가며, 해마다 수도회 초청 한국 방문 및 성지순례에도 적극 참여한다.

카자흐 고려인들은 1992년 카자흐의 독립 후 작은형제회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교회와 첫 만남을 가졌다. 카자흐 선교의 중심지였던 알마티에서는 대부분 작은형제회를 통해 선교활동이 이어졌다.

주어진 몫에 충실

고려인 첫 세례성사가 집전된 때는 지난 1999년. 총 12명의 고려인들이 신자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삼위일체본당에 교적을 둔 고려인 신자는 70여 명이다. 여타 다른 민족 신자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본당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한다.

2000년도에는 프란치스코 재속회도 발족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평균 연령층이 높아 능동적인 선교활동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고려인을 비롯한 카자흐인들의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알마티 삼위일체본당 고려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콘스탄틴(73)씨는 “강제이주 당시 땅굴 속에서 헐벗고 굶주려있는 우리들에게 옷가지며 먹을거리를 가져다준 카자흐인들의 친절을 잊을 수 없다”며 “가톨릭신앙을 알리고 나누는 것으로 보은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카자흐교회의 복음화 활동 안에서 새로운 겨자씨를 키우고 있는 터전으로 알마티 한인공동체(회장 조영국 안드레아)도 관심을 모았다.

사실 미주와 유럽 등의 몇몇 지역을 제외하면 해외교포사회에서는 이동인구 비율이 높아 공동체 전례 참여율을 높이는 것만도 큰 과제인 경우가 많다. 알마티 교포사회의 경우도 별반 차이는 없는 듯 했지만, 이곳 신자공동체는 소규모라도 알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 알마티 한인공동체는 삼위일체성당을 빌려 전례에 참례하고 있었다.

소속 신자는 50여 명. 또 적은 숫자이지만 예비신자교리반이 꾸준히 개설되는 것도 큰 특징이다. 전례 참례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복사단과 성가대도 운영한다.

한인신자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활이 카자흐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신앙의 모범으로 비춰진다는 부담감도 컸다고 말하지만, 주어진 몫에 성실히 사는 모습은 삼위일체본당과 교구 내에서도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한인교포들의 신앙이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있지 않고 알마티 지역 사회 밖으로 번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최근 한인공동체 신자들은 지역 내 장애인시설 등 사회복지시설과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인 후원노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들 신자들은 한인공동체 뿐 아니라 지역 선교에 도움이 될 성당 마련에 고심한다. 현재 공동체 인원 안에서는 성당 건립 등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보다 능동적인 신앙생활과 선교를 위해 꼭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다.

한인공동체 신자들은 급변하는 카자흐의 복음화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오롯한 믿음의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물질만능 사회에 영적 소중함 일깨워야”

■알마티교구장 겐리 T. 호봐니예프 주교

“카자흐스탄 국민을 구성하는 민족마다 다양한 관습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다양한 사목적 접근은 현재 카자흐가톨릭교회가 안고 있는 큰 과제입니다.”

카자흐 알마티교구장 겐리 T. 호봐니예프(Henry T. Howamiec.작은형제회) 주교는 특히 “경제성장만을 향한 사회변화의 급물살 속에서 ‘영성적 돌봄’은 더욱 중요한 몫으로 다가왔다”고 강조한다.

겐리 주교가 지적하는 시급한 사회문제도 바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 등이다. 최근 세계 전반에서 떠오르는 사회문제이긴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의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겐리 주교는 “요즘 알마티 젊은이들의 경우 이러한 시류에 이끌려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떠나려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며 “게다가 젊은이들은 물론 국민 대부분이 종교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교회의 과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이들에게 신앙적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겐리 주교는 “성직·수도자의 부족과 협소한 교회시설 등은 이러한 의지를 펼치는 장애물로 서 있다”고 말한다.

“제가 처음 알마티에 왔을 때는 너무나 가난한 모습에 놀랐었습니다. 지금은 가난 뿐 아니라 혼종혼과 알코올중독, 이혼, 낙태, 무신앙, 책임감 부족 등으로 가정 파괴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도 근본적인 교육지원 등이 필수입니다.”

한인 신자와 고려인 신자들의 성실한 신앙생활도 큰 힘이 된다고 전하는 겐리 주교는 “우선 많은 선교사들이 양성되고, 카자흐 복음화에 관심을 가져 이들이 기본적인 신앙생활이라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1993년 알마티에 파견된 겐리 주교는 가톨릭 월간 잡지 ‘크레도’(Credo) 편집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0년 주교로 서품돼 2003년 알마티교구장에 착좌했다.

사진설명

▶알마티 삼위일체주교좌본당 고려인 신자들이 한국성지순례 기념사진을 보며 담소하고 있다.

▶삼위일체성당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는 알마티 한인공동체 신자들이 미사전 이름표를 찾고 있다.

▶지난 1월, 한인공동체 신자들이 장애인시설 ‘꼽체’를 방문해 기금을 전달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