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 속의 가정사목(중)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7-06-24 수정일 2007-06-24 발행일 2007-06-24 제 2555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신자조차 "낙태 허용"…"생명의식 심각"

“인공피임·불임시술=반생명적 행위” 의식 미흡

겉도는 생명윤리 가르침…교회 적극 대응 시급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교구 시노드 최종 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는 오늘날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임에 대해 새롭게 선포하고 그 진리를 성실하게 증언하며 삶으로써 증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21항과 22항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세속주의, 실용주의, 개인주의에 따른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혼인과 가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생활에서 쾌락만을 추구하는 현상, 자녀 갖기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현상, 낙태, 피임, 불임시술, 인공수정, 동성애, 혼인의 초기 실패율 증가, 이혼, 비정상적인 혼인관계, 혼인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 등은 분명 혼인과 가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혼인관과 가정관을 거스르는 이런 현상들은 인간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을 붕괴시키고 사회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혼인과 가정에 대한 도전은 전세계적 추세이며, 특히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오면서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커다란 변혁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의 가정의 정체성과 의미, 역할은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으로 혼인과 가정의 고유한 소명과 개인 및 사회의 유지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던 역할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교회의 가정사목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현대 사회의 도전에 대해 분명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사목적 대응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정의 위기 상황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 사회 안에서 혼인과 가정이 처한 상황은 위기상황으로 파악된다.

우선 핵가족화와 가족 형태의 변화는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에 대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으로 가족의 핵가족화와 다양한 가구 형태가 증가해왔다. 평균 가구원 수는 지난 1960년 5.6명에서 2000년에는 3.0명으로 줄었다.

과거와 달리 혼자서 거주하는 일인 가구나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자녀로 구성되는 편부모 가족, 소년소녀가장 가구, 그리고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고 부모의 부양이 줄어들면서 늘어난 노인 단독 가구, 혼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동거 가구 등 비전통적인 가구 형태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재혼가정, 입양 가정, 그리고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흔한 현상이 아니지만 동성애자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가구 형태 역시 서구 사회에서는 자주 나타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가족제도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의 변화와 함께 비전통적인 가족제도의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면서 오늘날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가족제도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까지 일고 있다.

여기에 급속하게 증가한 이혼은 자칫 우리 가정의 붕괴까지 예견할 정도로 심각하게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우선 혼인율은 공식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70년 이후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1990년에는 혼인 인구가 이혼 인구보다 8.7배 많았으나 2002년 2.1배로 급속하게 낮아졌다. 각종 지표에서도 우리 사회의 혼인율은 급속하게 떨어졌다.

반대로 이혼 증가율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70년의 이혼 건수는 1만 1000여 건에 불과했으나 2002년에는 무려 14만530건으로 증가했다. 이미 이혼이 큰 사회적 불리함으로 작용하지 않는 서구사회에서보다도 오히려 더 높은 이혼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높은 이혼율은 당연히 미성년 자녀의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생명의 요람으로서 한국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낙태이다. 강력한 인위적 인구 조절 정책의 후유증은 우리나라를 낙태 천국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낙태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은 산부인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법적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한국의 낙태는 미혼 여성들의 무분별한 낙태, 부모들의 외면, 사회적 무관심, 비양심적인 의료인들의 상업적 의식, 정부의 오랜 인구 조절 정책, 사법부의 무관심 등으로 일반화됐고, 세계적으로도 최고를 기록하는 높은 낙태율을 기록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사회적 과제 중의 하나이다. 출산율은 연일 최저치를 기록해옴으로써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가 됐고 이는 사회의 존립 자체까지도 우려하게 할 정도로 위기를 심화시켜왔다.

이와 달리 노령인구는 급속히 늘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최단기간 안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가정과 생명에 관한 윤리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사목적이고 근본적인 것이다. 혼인과 가정이 당면하게 되는 위기 상황에 대해서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하고 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해왔다.

1981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가정공동체’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그 자체로서 ‘가정 교회’, ‘작은 교회’라고 강조하면서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 가정의 모범과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가정의 존엄성을 지키고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는 가정의 위기가 심화됨을 인식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다양한 문헌들을 통해 강조해왔다. 1980년 세계 주교대의원회의가 개최되고 난 이듬해에 반포된 회칙 ‘가정 공동체’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관심과 그에 따른 권고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다.

이 회칙은 가정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부터 이혼 증가, 낙태, 불임 등의 증가, 피임의 일반화 등 혼인과 가정에 대한 근본적 가치의 붕괴를 크게 우려하고 전통적이고 근본적인 원칙들이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 안에서 도전 받는 현대 세계 에서 가정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헌장,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평신도사도직교령, 사제양성에 관한 교령,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등 거의 모든 문헌에서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은 매우 중요한 비중으로 강조됐고, 교회의 가정사목은 가장 중요한 사목 영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생명윤리 문제를 다룬 중요한 문헌들에서 가정 문제는 그 핵심을 이룬다.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 역시 인간의 생명과 가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문헌이고 1974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에 반포된 ‘현대의 복음선교’, 1977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 나온 ‘현대의 교리교육’ 역시 혼인과 가정에 관련해 참조할 중요한 문헌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혼인과 가정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해 끊임없이 다양한 가르침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현대 사회의 혼인과 가정의 위기에 경계심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교회의 전통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들에 대해 신자 가정들에서조차 현실과의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에서 실시했던 한 조사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윤리적 지침 가운데 하나가 인공피임에 대한 금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신자들 중에서 35.8%만이 인공피임에 대해 반대했고, 나머지는 인공피임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교회는 인공피임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신자들은 부부 생활에 있어서 인공피임이 반생명적인 행위라는 의식을 별로 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공피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정관수술 등 이른바 불임수술을 하고 있는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4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회가 권장하는 자연출산 조절법을 사용하는 비율은 불과 14.6% 뿐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낙태에 대한 인식이다. 조사에 따르면 신자들 중에서도 부분적으로라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87.6%로 압도적이었고 그 이유로는 개인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60.7%로 절반을 넘었다. 또 실제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이 34.2%에 달했고 3번 이상 낙태를 한 여성이 11.6%로 나타났다.

불임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호되는 시험관 아기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즉 시험관 아기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인 51.6%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임 문제가 있을 때 대부분이 입양보다는 시험관 아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같은 통계가 나온 것은 당시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 1999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거의 유사한 결과가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40%가 낙태 경험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고, 50.5%가 교회가 금지하는 인공 피임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자연출산조절법은 10% 조금 넘는 신자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교회의 생명윤리 가르침이 겉도는 것에 대해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그러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너무 멀리 간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몇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악화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설명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이다. 출산율은 연일 최저치를 기록해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가 됐고 이는 사회의 존립도 우려하게 할 정도로 위기를 심화시켜왔다. 사진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입맞춤하고 있는 모습.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