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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 속의 가정사목(상)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7-06-17 수정일 2007-06-17 발행일 2007-06-17 제 255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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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비신자 생명윤리 의식 별반 차이없다

낙태·저출산 등에 대한 교회 가르침 실천 미흡

가정의 소중함 일깨우는 사목 대안 마련 시급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르침 중에서 가장 긴박한 도전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혼인과 가정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불가해소성의 원칙에 바탕을 둔 혼인과 가정의 소중함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 안에서 가정은 종종 더 이상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거해 그 존엄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족제도와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인구학적 변화에 따른 저출산과 고령화의 추세 속에서 교회는 가정사목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해야 하지는 않는가 하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더욱이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교회 안의 신자들에게조차 소홀하게 취급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혼인과 가정에 관해서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차별화된 정체성과 삶의 태도, 사고방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시대적 추세 속에서 가정교회로서, 가정의 소중함을 수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목적 대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책이 우선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 안에서 보다 철저하게 삶의 지침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

현대인과 현대 세계에 관한 교회의 교의를 천명하면서 인간 생활의 중요한 분야에 대해 교회의 사목적 견해와 지침을 밝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즉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현대 세계와 교회의 가장 긴급한 과제 중 하나로서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일을 꼽고 있다.

그래서 사목헌장은 제47항에서 개인과 사회의 안녕과 행복이 혼인과 가정이 올바로 서 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돼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공동체를 중시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오늘 이 사랑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부부와 부모가 그 숭고한 임무를 다하도록 도와 주는 여러 가지 도움을 진지하게 반길 뿐 아니라 거기에서 더 좋은 혜택을 기대하며 이를 증진하고자 노력한다.”

사목헌장은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혼인과 가정 제도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중요성과 가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존엄성이 어디에서나 똑같은 밝기로 드러나지는 못하고 있다. 중혼, 이혼의 만연, 이른바 자유 연애 또는 다른 기형으로 그늘이 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부부 사랑은 흔히 이기주의, 향락주의, 부당한 출산 거부로 더럽혀지고 있다.

더욱이 현대의 경제, 사회 심리, 정치 등의 생활 조건이 가정에 가볍지 않은 혼란을 미치고 있다. 끝으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 증가로 생기는 문제들을 염려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로 양심이 고뇌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과 가정 제도의 가치와 힘은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자체가 거기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흔히 더 자주 여러 모양으로 이 제도의 진정한 특성을 드러내 준다는 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공의회의 관심대로, 한국 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역시 별도의 ‘가정사목’ 의안에서 서론과 마지막 ‘제안사항’을 포함해 총 9개장을 통해 가정사목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한다.

의안은 1장 2항에서 공의회의 말투와 똑같이 “개인의 구원과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구원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고 천명한다.

특히 의안은 가정사목의 대상을 단순히 신자 가정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 구성원 전반으로 넓히고, 가정사목을 통해 교회 내적 복음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사회 복음화까지도 도모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사목회의 의안은 최근 가정사목에 대해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통합적 사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즉 의안은 가정사목을 “교회의 일반 사목 활동 중 하나의 특수한 활동”으로 간주하고 다만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머물고 있어 모든 일상 및 교회 생활의 근간으로서 가정사목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안에서 가정사목은 대체로 생명윤리 차원의 시각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70년대와 8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인구정책은 강력한 인위적 인구 억제 정책으로 요약되며, 교회의 입장은 피임, 낙태 반대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윤리 측면의 활동을 중심으로 피력됐다.

하지만 90년대 후반과 2천년대를 전후해 열린 각 교구 시노드들은 가정사목에 대해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사목 전체가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질 필요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장차 가정사목의 향방을 제시해주는 커다란 기점이 됐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

하지만 90년대말과 2천년대에 들어서, 우리 사회는 저출산이라는 사회의 유지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현상과 함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봉착하게 된 고령화 사회라는 두 가지 큰 사회적 도전에 직면한다.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저출산율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까지도 어려워보일 만큼 급락했다. 60년대 6명의 높은 출산율이 1984년 2.1명, 1999년 1.43명, 그리고 2001년에는 1.3명으로 떨어졌다. 이듬해인 2002년에서야 우리나라는 인구 정책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미 고착된 저출산율을 다시금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율은 평균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가속화된 고령화 사회로의 사회적 변화와 함께 커다란 사회적인 파급력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 교회 안에서의 고령화 현상은 일반 사회에서의 강도를 훨씬 넘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교회 고령화는 사회 전반의 고령화 속도와 폭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는 매년 발표되는 교세통계를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40대 이하 연령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40세 이상부터는 급격한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30대 청년층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저출산율과 고령화가 우리 사회 가정의 큰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가정사목 환경에 큰 영향을 주게 마련이고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는 사목적 대안의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과 현실의 괴리

여타의 사목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으나, 가정사목과 관련된 주요 사안들이 지닌 뿌리깊은 문제는 신자들의 정체성 및 교회 가르침과 실제 삶이 크게 유리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가정사목의 문제들을 보면, 낙태, 피임, 저출산, 혼인과 가정의 의미에 대한 인식, 성개방 풍조, 독거노인 및 고령화 사회의 사회 문제 등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주요한 문제들의 현실을 보면, 신자 가정과 비신자 가정의 실태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일부 사안의 경우에는 오히려 신자 가정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의 가장 명확한 가르침인 낙태에 대한 반대 입장에 있어서도 신자들은 사안별로 거의 90%에 가까운 찬성률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수년 동안 큰 사회적 논란이 됐던 배아 복제 연구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들의 의식 수준은 비신자들과 거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실태는 교회의 가정과 생명에 대한 전통적인, 명확하고 분명한 가르침들이 실제로 신자들의 의식과 실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교회가 생명의 요람으로서 가정의 소중함을 수호하려는 노력에 큰 장애가 된다.

이에 따라 이제는 교회가 원론적 가르침만을 되풀이하는 소극적인 자세에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특히 교회는 신자들 사이에 만연한 잘못된 인식과 태도의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실태를 인정하는데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신자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을 불평하듯 탓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기존의 가정사목의 틀과 방향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정확하고 냉정하게 실태를 파악하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범교회적인 연대와 협력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스스로 모범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사랑의 공동체로서 가정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을 향해 혼인과 가정, 생명의 존엄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에게조차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어 이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대안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6남매를 키우며 오순도순 살고 있는 의정부교구 이남주-안현정씨 가정의 정겨운 모습.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