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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이야기] 29.변화된 세계 거듭나는 교회되길

입력일 2007-05-27 수정일 20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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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5월은 집, 산, 들-날짐승을 비롯한 벌, 나비와 같은 곤충, 여기에 초목들까지도 새로운 종의 번식을 위해 장관을 이루는 시절이다. 이런 덕분에 지금 사제관에는 꿩 병아리와 닭 병아리가 귀엽게 어울리며 자라고 있다.

제주도에는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사는 가족이 많다. 하늘을 나는 생명들과 땅을 딛고 다니는 생명들의 조화로움은 살같이 정겹다.

내가 사목하고 있는 이곳에는 곶자왈을 포함한 마을 소유의 넓은 공동목장(60만평)이 있다. 조랑말과 망아지, 소와 송아지, 당나귀와 염소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풍경은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하는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 모습이다.(이사 11)

엄마와 갓 태어난 새끼가 서로를 확인시켜주는 교감행동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엄마는 새끼에게 풍성한 젖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열심히 풀을 뜯고, 새끼는 끼리끼리 모여 경주라도 하듯이 엄마 주위를 달리기 하는 모습들은 말 그대로 평화로움이다. 누가 이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명명했는지 걸작 호칭이다.

지금 ‘평화의 섬’ 제주도는 ‘해군기지선정’을 놓고 갑론을박 줄다리기로 시끄럽다. 목장에서 노닐고 있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이곳 제주도를 그런 세상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일찍이 하느님 축복의 섬으로 거듭나도록 은혜로움을 베풀어 놓으셨다면 그냥 돌려주면 될 텐데….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 1950m)이다. 올려다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해발고도는 대단히 높다. 동지나해를 오가는 바람과 구름은 모두 이 산세 앞에서 주춤거린다. 그래서 한라산의 동서남북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내가 제주도에 둥지를 틀고 생활한 날이 1년을 조금 넘지 않았지만 느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제 제주도는 옛날처럼 고립되고 폐쇄적으로 살아야 할 유배지 같은 섬이 아니다. 세계로 웅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축복의 선물, 은총의 또 다른 열매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생을 마치신 수많은 사람들과 연로하신 어른들, 가끔 그분들이 남겨 놓으신 흔적과 후손들의 얘기에 의하면 제주도는 세상의 시작이고 끝인 듯 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그러나 이젠 세계마저 한 지붕 가족처럼 생활권을 좁히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실감하게 된다. 교회도 이런 세상 속에서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특히 제주도만의 작은 교구 공동체에 머물러 있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제주도를 넘어 한반도를 아우르고 대륙으로, 세계로 나눔을 넓혀가는 지평을 열어야한다.

모든 생태계는 출산과 잉태를 거듭하며 새 세계로 생명력을 발산시키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민의 의식도 새로운 세계질서에 발맞춰 새롭게 거듭 나야한다. 더불어 교회도 새 지평을 열어 가는데 투신하는 준비를 통하여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꾸어 가야겠다.

주님의 보편사랑과 축복이 은총의 꽃비가 되어 우리 신앙생활에 촉촉이 젖어 들기를 소망해 본다.

김남원 신부 (제주교구 고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