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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이야기] 27.노인들께 삶의 안식처를

입력일 2007-05-13 수정일 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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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나면 땅이 굳어진다. 하늘이 맑으면 농부들은 살같이 부드러운 농토를 만들기 위하여 바쁜 발걸음으로 들판에 간다. 이제 맑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봄 농사를 마무리 하느라 고산의 들판은 바쁘다.

이 곳 농부들의 마음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굽어진 몸매에 모양도 안나는 작업복을 걸치고 들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뿌리고 노력한 만큼 수확을 거두며 기쁨을 나눌 수만 있다면 행복해 하는 이 곳 고산의 농부가족들은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주일이면 모여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정겨울 뿐이다.

내가 사목하고 있는 고산 공동체의 사람들은 정겹다.

밭일에 지친 몸으로 가슴에 멍든 삶을 안고 생활하지만 마음만은 천사다.

젊은 세대가 도시로 많이 떠나고 연로하신 어른들이 활동을 많이 하지만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생활력을 닮았기에 진실로 모범적이다.

이런 어른들의 신앙심은 쉽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의 신심 생활과는 너무나 다르다.

어른들은 세상이 주는 눈, 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신다.

마을주민에 대한 복음화율도 예전에 비해 낮고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많이 식어 버렸다. 이런 모습에 나는 무거운 책임감과 하느님께 받은 소명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뿐이다.

‘조냥정신’이라고 불리는 이 제주도 문화는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활동이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않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생활양식이다.

조냥정신은 아름다우면서도 마음의 한 구석을 아리게 한다. 자식을 낳고 키워서 독립을 시킨 뒤에도 자기 자신의 삶을 힘들게 꾸려간다는 것이 지나친 자기사랑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팔순을 오르내리는 많은 어른들에게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로움을 발견한다. 그 분들은 살아온 여정이 만들어 놓는 존경과 흠숭의 예를 하느님께 신앙행위로 드러내신다. 언제나 겸손하시고 온화하신 하느님 나라 어린이들인 그 어르신들이야 말로 하늘나라에 초대 받았다. 우리 어른들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생활을 목자의 안내에 따라 하려한다.

지금 우리 본당은 이런 어르신들에 의해 아름다운 공동체로 변화되고 있다. 다만 제주도에서도 시골인지라 전통과 관습에 젖은 제주 문화에 익숙하여 21세기의 급속한 발전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굳어진 이곳 어른들의 생활양식은 나에게 무척 생소하면서도 살아있는 그림처럼 비춰진다. 이 모든 독특한 삶의 자리들이 익숙해 질 때 제주도에서의 목자 생활도 원숙한 맛을 더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하시는 우리 본당의 하늘나라 어린이들께서 이제는 일에서 좀 쉬셨으면 좋겠다. 쉴 수 있도록 그 분들에게 삶의 안식처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 특히, 교회는 앞장서서 그 분들에게 사랑의 쉼터를 만들어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남원 신부 (제주교구 고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