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본당신부이야기] 24.더불어 살아가는 것

입력일 2007-04-22 수정일 2007-04-22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제주의 봄날은 아름다운 시간이지만 몹시 바쁘다.

동서남북은 바다의 영향으로 기온은 영상이지만 체감날씨는 영하의 날씨를 뺨 칠 정도다. 이러한 제주도의 제주교구로 파견 온지도 한 해를 훌쩍 넘기고 4월의 부활 제3주일을 맞고 있다.

소위 내륙이라는 육지와 내가 생활하고 있는 제주도는 “이거다!” 라고 할 수 있는 뚜렷한 차이는 없지만 많은 것이 다르다.

서울대교구의 사목생활에 익숙해 있던 터라 제주교구에 와서 그것도 제주도에서 가장 한적한 ‘고산’ 이라고 하는 사목구에 부임해 펼치는 사목생활이 이채로운 것이 사실이다.

서울에서의 사목도 나에게는 새삼 다른 복음선포 였지만 내 삶의 터는 강원도 삼척의 작은 바다 마을이다. 적응하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제 한 해를 살아 내며 색다른 제주도의 문화를 익혀 가고 있다.

제주도는 주민 대부분이 농사로 일생의 시간을 보낸다. 본당의 가족들은 대부분 밭농사를 하고 공소의 가족들은 과수농사를 짓는다. 주변 환경이 이런지라 스스로 그들과 함께 다양한 일거리를 찾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말, 닭, 강아지 등 동물들과 함께하는 생활도 즐겁기 그지없다.

본당 사목에도 바쁘지만 짬짬이 시간을 내 주변 환경에 적응해 가는 일에 기쁨을 채워간다.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길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과 동네 이야기, 교회 이야기, 그리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들 모두 만날 때 마다 ‘우리 고산 신부님’이라고 불러준다. ‘우리’라는 단어는 이제 정겹기 까지 하다.

해안(차귀엉알)에 가면 해녀를 만난다. 그들과 함께 썰물인 바다의 바위틈에서 여러 가지 해산물을 채취한다.

먹을거리를 그물망에 담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물질을 끝내고 잡은 소라, 전복, 성게 등 해산물을 정리하는 우리 동네 해녀들과의 만남도 역시 정겹다.

그 분들도 인사를 나눌 때마다 ‘우리 동네 신부님’이라 하고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리 정겨운 것만은 아니다.

투자와 소득이 불균형을 이루는데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져버릴 수 없어 그들은 지친 몸을 토지에 봉헌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살갑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야 한다.

본당과 동네에서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통해 섬김과 희생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의 옛 특징은 색이 바랜지 오래다. 제주도의 한적한 마을 고산에도 이촌향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젊은 세대는 대부분 떠나고 나이든 어른들만 남아 있는 듯싶다.

이 분들과 나눔과 섬김, 희생의 기쁨을 승화시킬 봉헌의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어둠이 내리는 저녁마다 고뇌하게 된다.

김남원 신부 (제주교구 고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