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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이야기] 23.십자가 없이 영광도 없다

입력일 2007-04-15 수정일 200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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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은 앓는 존재

25년간을 교도소에서 보낸 한 러시아 그리스도인이 쓴 책 속에 어느 수도자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수도원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수도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수도원장이 그의 꿈속에 나타나 “깊게 파거라. 너의 마음을 밝히는 금괴를 찾을 때까지 네 마음의 어둠을 깊이 깊이 파거라” 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깊은 곳의 금괴를 찾아내기 위해 더 큰 고통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십자가 없이 영광도 없다’(No Cross, No Crown)는 것을 늘 강조하며 가르치고 묵상한다. 그러기에, 그 고통의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 왜? 왜 고통인가? 고통! 아픔, 그 속에서, 바로 그 속에서 자신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치료를 원한다. 약을 원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은 약이 되고 치료가 된다. 씨알은 앓는 존재다. 알이 들자고 앓는다. 진정한 앓음(아픔)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의 씨알을 주시기 위한 앓음이다. 우리가 고통을 말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고통을 통해서 그 생명과 영광이 주어졌음을 알게 되는 ‘앎’이 주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의 비극은 고통 없이 영광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또의 열풍이 몰아치고, 대박의 꿈을 갖고, 카드를 통해서 빚을 지고 너무 쉽게 고통 없이 갖고 누리고 하는 것을 바란다. 오늘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인 조차도 하느님의 능력, 기도응답,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고통 없이 형통하고 영광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은 결국 일이고 노동이며 땀 흘리기다. 도구며 기기에 손때 묻고 땀이 저린 꼭 그만큼 우리는 살아간다. 그들과 더불어 살다가 그들이 우리 육신의 일부가 되는 만큼 우리는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위해서 비우고, 낮아지고 순종해야 한다. 그 고통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일으키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영광을 갖게 한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큰소리보다는 신음소리로, 주장하기보다는 겸손으로, 기득권을 갖기보다는 자기비움으로 복음화를 위한 고통의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형제 중 한 사람은 “제가 처음 하느님을 믿은 때부터 주님은 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모든 잘못과 감정들을 잊어버리고 모든 복잡한 것들을 놓아버리기로 했습니다”라며 진한 신앙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멈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사도 바오로의 표현처럼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죽음, 묻힘 그리고 부활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로마 6, 4~6 참조)

허정현 신부 (수원교구 당수성령본당 주임)

※ 그동안 집필해 주신 허정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