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소설로 본 가톨릭신문 창간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7-04-01 수정일 200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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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방방곡곡 환희의 우슴소리 집집이 가득 하리라”

"우리 조선 땅에도 교회 소식지 하나쯤 있어야하지 않겠나”

“알고 싶다 교회사정 전하고 싶다

신덕으로 무기 삼아 예수 말씀 앞세우니…”

최정복 윤창두 서정섭 김구정 이효상 최재복 6명 뭉쳐

촛불 아래 다진 결의 ‘천주교회보’ 창간으로 결실 맺어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붉은 불이 세 개나 동시에 깜박거린다. 편집국에서 온 메신저다. 분명 편집국장, 편집부장, 편집 담당자의 메시지일 게다.

원고 마감 시간 조금 넘겼다고, 세 명이 동시에 원고를 독촉해 댄다. 담배 입에 물고 신문사 건물 옥상에 오른다.

어느새 바람이 참 순해졌다. “휴우~” 담배 연기를 가슴에 깊이 넣었다 다시 토해낸다.

옥상 난간에 기대 세상을 본다. 모두들 참 바쁘다.

촛불 아래 타오른 ‘가톨릭’ 소식지

시간은 이미 신시(辛時, 오후 6시30분~7시30분)를 넘기고 있었다. ‘서둘렀어야 했는데….’

집 앞에서 벌어진 동네 후배들의 말다툼에 끼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네가 그르다” “네가 옳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라며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하는데 한시간을 넘겼다.

“자 이제. 화해하라구. 나중에 내가 술 한잔 살테니까. 한 동네 살면서 이래서 되겠나.”

제법 그럴싸한 훈계까지 하자, 다툰 이들이 마지못해 등 돌리고 뒤돌아 섰다.

윤창두는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이미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목 뒷덜미에 땀이 촉촉해져 올 무렵, 좁은 골목 막다른 곳 사립문 앞에 설 수 있었다. 윤창두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요셉이, 내가 왔네.”

툇마루에서 가부좌 틀고 촛불에 의지해 신문을 읽던 최정복이 윤창두를 맞기 위해 급히 일어섰다. 그 때문에 마루가 삐걱거렸다.

최정복은 윤창두 보다 나이가 10년 아래였지만 촛불 그림자 때문인지 몸은 두 배나 커 보였다. 최정복은 전등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이기도 했지만, “늘 기도하는 천주교 신앙인들에게는 촛불이 성정에 맞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왜 이리 늦으셨습니까. 목이 빠질 뻔 했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성격 닮아서, 오는 길에 용을 좀 썼네. 아는 아이들이 집 앞에서 다투길래 훈계 좀 했지.”

최정복이 대구의 각종 청년 단체 일에 관여하며 청년 신앙·사회 운동을 이끌고 있는 것을 빗댄 말이었다. 최정복이 윤창두의 어깨를 툭 쳤다.

“누가 성 유스티노 신학교 일반교육 교사가 아니라고 그럽니까. 배명학교 교사와 교장까지 지내신 분이…. 나야 30대이니 그렇다고 쳐도, 형님은 나이가 40줄에 들어섰는데, 그런 아이들 싸움에 끼어 들면 체통이 서겠습니까.”

윤창두가 미안함을 감추려는 듯, 말머리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그 일은 어찌 되었나.”

몸은 어느새 최정복 바로 앞까지 당겨져 있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최 정복이 신문과 잡지 하나를 내보였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가톨릭 타임즈’와 ‘カトリツク’(가톨릭) 이었다. 윤창두가 신문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거 좋네 좋와. 우리 조선에도 이런 것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최정복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カトリツク’(가톨릭)과 가톨릭 타임즈는 일본 교회 소식과 선교 현황, 사회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 복음 강론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윤창두의 눈은 일본 청년 신앙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기사에 한참동안 머물고 있었다.

“형님.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도 이제 신문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 소식을 신앙인들이 제대로 모른다고 해서야 말이 됩니까.

제 집안 일을 똑똑히 모름은 수치일 뿐 아니라 그 집을 더 흥왕케 할 방도를 세울 수도 없습니다.”

“자네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이. 내 성심껏 힘쓰겠네.”

대문이 삐걱 소리를 냈다. 최정복의 6살 아래 동생 최재복이었다.

“자네 몸은 여전히 튼실 하구만.”

윤창두가 최재복의 손을 이끌고 옆자리에 앉혔다. 최재복은 남방 천주공교 청년회 회장인 형 최정복을 도와 체육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신문 만드는 일 때문에 모이셨군요.” 최재복이 윤창두가 들고 있던 신문을 뺏어들었다.

“그나저나 일제가 허락을 하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나도 그게 걱정이야.”

최정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제의 인쇄 매체 검열이 한층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있는 신문도 줄줄이 폐간시키는 판에 새로 신문을 낸다는 것이 쉬울리는 없었다. 윤창두가 최재복으로부터 다시 신문을 뺏어들며 말했다.

“신문사 사무실이야 현재 청년회 사무실로 하면되고, 일할 사람이야 인재들이 널려있어. 시대일보 기자 서정섭 스테파노와 신학교 다니다 나온 김구정 이냐시오, 또 동경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이효상 아길노도 있지 않는가. 헌데…. 신문 허가만 나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최정복이 초를 하나 더 꺼내와 심지에 불을 밝혔다.

“발행 허가 문제는 창두 형님이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대구대목구 부주교이자 계산동본당 주임신부님이신 베르모렐 신부님께 발행인과 편집 책임을 부탁해 보지요. 외국인이고 또 선교사이니까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 할아버지 신부님이 허락하실까요.” 최재복이 고개를 갸우뚱 했다. 윤창두가 팔을 걷어 부치며 말했다.

“그 분이면 허락하실거야. 지금까지 청년들의 활동을 잘 이해해 주셨지 않는가. 아마 내가 부탁하면 적극 밀어 주실거네.”

최정복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그 문제는 형님만 믿겠습니다. 저는 편집방향과 보도 방침, 편집위원 선정 등 세부 사항을 준비하겠습니다.”

초가 하나 더 켜졌다.

이제 시작이다!

“최정복 회장님과 창두 형님, 재복 형님은 왜 이리 늦어. 매번 늦으신다니깐.”

출석 노트를 빤히 들여다 보던 청년회 서기 서정섭이 안경을 코 잔등 위로 바짝 밀어 올렸다. 윤창두와는 20살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평소 편한 친구 대하듯 했다. 윤창두도 그런 격의 없는 소탈한 성격의 서정섭을 좋아했다.

“시대일보 기자님, 신문에 대서 특필 하라구 ‘회장님과 윤창두 전교부장님 오늘도 지각하다’라구 말이야.” 김구정이 서정섭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이는 30을 넘겼지만 2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었다. 신학생으로 복사직까지 받았던 그는 8년전 전국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신학교 내에서 만세 운동을 주동한 인물이었다. 신학교내에서 만세를 외쳤으니 망정이지, 길거리에서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감옥에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약령시장 골목에서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죽거나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자꾸, 기자, 기자 하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 형님만큼 글을 잘 쓰지도 못하는데….”

“형님들. 조용히 좀 하고. 우리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의논이나 하자구요.” 22살 이효상이 붙어있던 김구정과 서정섭을 떼어 놓았다. 일본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독문학과를 나온 수재다. 대학 재학시절 가톨릭 연구회 총무를 맡을 정도로 신앙에 열심이었다.

계산동본당 베르모렐 신부는 그런 그를 늘 가까이 두고 말 벗으로 삼았다.

“드르륵.” 최정복과 윤창두, 최재복이 들어섰다. “해결됐네.” 윤창두가 두 팔을 위로 올리는 몸짓으로 말했다.

“신문 발행 허가가 떨어졌다는 말이네. 부주교님이 발행하는 신문이라니까 관청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락 하더라구.”

“우리도 이제 우리 교회만의 신문이 생기네요.” 이효상이 활짝 웃었다.

“앞으로가 중요하네. 이제부터 바빠질거야.” 최정복이 종이 한 장을 탁자위에 올렸다. 조직표가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만장일치로 조직표에 동의했다.

편집위원 대표는 최정복이 맡기로 했다. 최정복은 또 교회 소식란과 편집, 인쇄소 관련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윤창두는 교리부분과 호교논설 부분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 밖의 기사는 이효상과 서정섭, 김구정이 작성하기로 했다. 최재복은 기사 작성과 함께 제반 업부를 총괄해 협조키로 했다. 신문은 일단 ‘4개면 발행’으로 정하고 훗날 기회를 봐서 지면을 늘리기로 했다.

윤창두도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명색이 신문이 창간되는 것인데, 창간 정신이 있어야 할 것같아서…. 내가 조금 끄적여 봤네.” 창호지 위에 펜으로 정성스럽게 쓴 글이었다.

교회가 목적하는 그까지 걸어가야

“… 우리는 교회가 목적하는 그까지 걸어가야 하겠고. 그 길에는 많은 적의 복병이 있은 즉 일치단결하여 용맹한 군대와 같이 행진곡을 따라 보조를 일치하야 규율 있고 훈련 있는 행군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고로 연락 단결하여 일치한 보조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보는 실로 여러분의(독자들의) 것이외다. 많이 기고하사 좋은 의견을 주시며 또한 편달하사 느릿느릿한 거름을 빨리 가게 하옵소서….”

“좋다 좋아.” 최정복이 손뼉을 쳤다.

가장 나이 어린 이효상도 글 하나를 내놨다. “저도 글 하나를 써봤는데요….” “효상이야 감상적인 글 잘쓰기로 유명하지 않는가. 어디 한번 보세.” 윤창두가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낫다! 낫다!

적고 적은 이 내 몸이 고요한 첫 새벽에 그윽히 울리는 종소리 처럼 우렁차게 소리치고 나왔다.

너무도 오래 묵묵했다. 눈이 있어도 못 보았다. 귀가 있어도 못 들었다.

입이 있어도 말 못했고 손이 있어도 못 적었다.

알고 싶다. 교회사정 전하고 싶다. 이리저리 진리로써 인간불순 복멸하여 승전고를 울려보자.

우리의 이마에는 십자가를 새겼으며 발사마 향으로 목욕하고 신덕으로 무기삼아 예수말씀 앞세우니 위세 당당 이내로세.

눈 있는 자 어서 보라. 있거든 말 할지며, 용맹커던 도전하라. 모든 사배 만고의 진리에 항복하리라.

봄이 왔다 봄이 왔어요. 어름으로 다지이고, 눈으로 덥폈던 대지에 따뜻한 봄이 왔다. 훈훈한 봄바람에 헐버섰던 모든 나무 새 잎나고 멜갛게 버서졌던 들과 언덕 채색 입었는데 깊히! 잠들었던 만생물 평화의 봄을 마지하여 기쁨의 노래한다.

이 어린 나의 몸. 봄과 같이 탄생하여 방방곡곡 찾아갈 때 환희의 우슴소리 집집이 가득 하리라.”

한 잔 술 위로 흐르는 ‘성모공경가’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특히 윤창두가 기뻐했다.

“상당히 전투적인 글이네. 감상적이기도 하구. 역시 젊은이는 달라. 특히 신앙을 위해 세상과 싸우겠다는 패기도 돋보이고. 좋다 좋아.” 윤창두가 이효상 얼굴을 와락 끌어 안았다. 이효상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이렇게 기쁜 날 술이 빠질 수야 없지. 자 모두들 술 한잔 하러 가자구.” 최정복이 윤창두를 문 쪽으로 등 떠밀었다.

일행은 약령시장 골목 안에 있는 단골 선술집으로 향했다. 큰 사발이 나왔고, 막걸리가 그 안에 가득 부어졌다. 안주로는 약방에서 감초를 몇 조각 얻어왔다. 한 잔 두 잔, 술잔이 계속 돌았다.

최정복이 윤창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둘 다 취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만든 신문이 80년, 100년이 지날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걱정은 후배들에게 맡기자구. 우리는 지금 창간호부터 잘 만들면 돼. 훗날 후배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려면….”

이효상, 서정섭, 김구정, 최재복도 함께 어깨동무를 했다. 6명이 하나가 됐다. “노래를 불러 볼까.”‘성모 공경가’가 약령시장의 밤 공기를 갈랐다. 멀리서 일본 순사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파일 올리는 중’ 창이 잠시 뜨더니 순식간에 원고가 편집국 컴퓨터로 들어간다.

‘전송 완료’. 기사를 작성할 때는 2시간 넘게 걸렸는데, 원고 전송에는 2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선배님, 원고 마감도 다 했는데 술 한잔 하시죠.” 한 잔이 한 잔이 안 될 거라는 것을 안다.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몸을 술에 맡겨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신문사 밖은 봄 기운이 가득했다. 마음과 몸이 함께 기뻐했다.

갑자기 봄의 기쁨을 외쳤던, 탄생의 기쁨을 외쳤던 그때 그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동료들과 어깨동무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내일은 대구에나 한번 가볼까 한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