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전례 3.하느님 백성의 집 성당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7-03-18 수정일 2007-03-18 발행일 2007-03-18 제 25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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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한국 천주교회 (10)

기능만 강조한 성전, 의미는 실종

세례대 고해소 위치 등 중요

불편해도 전례정신 되살려야

“이번에 우리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바꿔요.”

“지난번에도 뭘 고치지 않았나요?”

“예…. 이번에 신부님이 바뀌셨거든요.”

교회 안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런 대화는 한국 교회 건축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앙생활의 활성화나 전례 참여의 제고 등 공동체의 필요가 아니라 사제의 기호나 개인적 생각에 의해 이뤄지는 교회 건축은 그만큼 얕은 한국 교회 건축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새로운 성당들이 나타나고 기존 성당들은 재정비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들이 간과되기도 했다. 그것은 교회 건축은 어떠해야 한다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전례에 맞갖은 장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아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즉 공의회 이후 교회 건축의 핵심은 제대 위치나 회중석의 모양 등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건축 공간들이 ‘적응’(aggiornamento)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participatio actuosa)라는 공의회의 두 가지 원칙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닿아 있다.

하지만 한국 교회 건축은 이러한 정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이뤄진 면이 적지 않다. 공의회가 제기한 쇄신에 관한 문제의식이 교회 건축 과정에서 일반화된 것이 아니라 공의회 이후 급속하게 도입된 형식들을 별 비판의식 없이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전례를 방해하는 요소마저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사례가 적잖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 교회 건축의 흐름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고무하기 위한 성당 내부공간의 재배열 움직임은 이미 20세기 초에 시작된 전례운동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공의회를 통해 공식화되고 보편화된다. 성당에서 잊혀졌던 세례대를 부활하고, 회중석과 제단 사이의 적극적인 관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내부공간에 영향을 미쳐 이전의 긴 회중석을 지닌 장방형 평면에서 벗어나 정사각형이나 원, 타원형, 사다리꼴과 같은 다양한 모양의 교회 건축이 나타나게 된다.

1950~6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파괴된 교회 재건붐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돼 유럽은 중세 고딕시대를 능가하는 교회 건축의 황금기를 맞기도 했다.

다원주의 시대와 교회 건축

1970년대 이후 유럽 교회 건축은 다양성의 시대를 맞는다. 이미 1960년대부터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포스트모던 건축 사조는 기존의 규범적 건축 틀에서 벗어나 역사주의, 절충주의, 표현주의, 구조주의, 지역주의 등 다양한 건축적 개념들을 실험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전통과 역사를 부정하는 해체주의 건축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교회의 세속화와 궤를 같이해 인간의 존재 의미와 ‘하느님과의 재결합’이라는 근본 문제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교회 건축은 위기를 맞게 된다.

새로운 천년기에 들어서 많은 서구 교회들이 문을 닫거나 세속적인 용도로 전용되는 한편에서는 고속도로 교회, 휴양지 교회, 기념교회, 피정교회 등 다양한 유형의 교회가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종교 건축들은 지역문화의 다양함을 반영해 인상적인 건축물을 창조해냄으로써 사람들이 떠났던 교회를 다시 찾도록 이끌고 있다.

이제 교회는 전례만 이뤄지는 장이 아니라 물질문명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인들이 찾아와 명상과 기도, 사색, 체험 등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돌아가는 공간이 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건축

우리나라도 1960년대에 독일인인 베네딕도회 알빈 신부에 의해 공의회의 전례 정신을 잘 반영한 독일 교회의 영향을 받은 성당이 왜관, 구미, 상주, 대구, 부산 등지에 지어졌다. 한국 건축가들에 의해서도 이전의 장방형 일변도의 형태에서 벗어난 교회 건축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 건축계는 서구와 같은 토양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양식이나 기술적 측면에만 머문 피상적인 건축이 대부분이었고, 이 때문에 사제나 신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공의회 정신을 반영해 지어진 교회 건축물들마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례의 편의나 과거의 습관화된 전례 형태에 맞춰 사라지는 등 굴곡을 겪고 있다. 지금도 교회 건축들이 지어질 때 사제나 신자들의 편의라는 기능적인 면이 가장 우선시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기껏해야 신자들의 투표라는 의사 결정이 있었다는 게 위안이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로 교회 건축의 토착화는 말만 무성했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 토착화는 그리스도의 신비 속에서 특정한 문화가 인식되고 정화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토착화는 선교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교가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 교회의 경우 기와 등 전통 한옥 구조를 이용한 건축을 비롯해 전통미를 살린 성미술 도입 등 몇몇 분야에서 이뤄지는 노력이 토착화를 위한 모색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건축 사조에 대한 철저한 평가 없이 현상만을 도입하는데 그치고 있어 교회 건축의 내적인 이념과 외적으로 드러나는 구조와 형태가 일치되지 못하고 장식적인 요소만 과대하게 도입하는 현실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 교회 건축에 있어 토착화는 공의회 이후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여전히 신자들에게 어렵게 다가오는 전례의 토착화 문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늦더라도 확실히 다져나가는 것이 신자들에게는 하느님나라를 가깝게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인터뷰] 단국대 건축공학과 김정신 교수

국내 성당 메시지 전달 취약

의미 형식사이 괴리 너무 커

“한국 교회의 건축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허약한 내부 공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허약함을 성미술로 채우려 하거나 외부 치장에 치중하는 모습이 적지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린 지 40년이 넘었지만 교회 건축에서 공의회 정신을 제대로 소화하고 재해석해서 반영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김정신(스테파노 사진) 교수의 평가다.

“성당은 하느님 백성들의 집입니다. 이 집에서 백성들간의 화해가 이뤄지고 친교가 다져지고 일치가 도모되어야 합니다. 그냥 미사만 드리는 공간이어서는 전례의 참 의미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김교수는 이를 ‘전례와 건축 사이에 놓인 강’으로 묘사한다. 그만큼 괴리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러한 괴리는 교회 건축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례 활동의 초점인 제대와 감실에 대한 신학적 고려는 물론이고 신앙생활에 있어 없어선 안 될 고해소의 위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신앙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례대도 성당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성당에 유아실을 두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김교수는 “유아실은 편의주의에서 나온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전례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유럽 교회는 교회 건축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전례 공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차원에 대한 징표를 읽어냄으로써 그들의 내면에 가톨릭을 되살려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럽 국가들의 고속도로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교회와 휴양시설을 끼고 들어서는 휴양지 교회를 비롯해 각종 기념교회 등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교회 건축들이다.

“한번은 파리 시내에 새로 지은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 근처에서 뜻밖에 성당을 발견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거의 가득 찬 성당에서는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습니다.”

김교수가 받은 충격은 다름 아닌 서구 교회에 대한 오해가 깨어지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을 틈타 미사를 드리는 수많은 젊은 직장인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성당은 현대적이었지만 세련되면서도 전례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러한 교회 건축들을 통해 서구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한 현대에 새로운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치셨던 신앙 선조들의 삶에 비춰 조그만 불편도 참지 못하는 우리 신앙을 돌아볼 때 토착화의 새로운 출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전례’의 기능에 충실한 내부 공간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태의 왜관성당 내부

▶수원교구 송현성당은 부채꼴의 배열과 세례대 고해소 감실 등이 공의회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