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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신부이야기] 20.땅, 생명돌보는 어머니

입력일 2007-03-18 수정일 200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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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라

우리 민족은 일찍이 농경생활을 하며 땅과 인연을 맺어왔다. 유목민족과 달리 농경민족에 있어 흙과 땅은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단순한 농경지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다. 농경 민족에게 있어 흙과 땅은 태어난 곳이자 되돌아가야 할 숙명적인 근원이었다. 흙을 일구고 그 흙 속에 식물을 키워 양식을 장만하며, 흙을 이겨 지은 집에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겐 흙과 땅이 가장 크고 유일한 은혜적 존재이고 안식처였다.

땅은 ‘고향’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땅에서 태어나 자신의 뿌리와 가치관을 찾는 토착화 정신이 땅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게 해준다.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사고는 물과 더불어 자연의 근간으로, 함께 돌아가야 된다는 인생행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국(母國)이라는 말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인간에게 하늘은 군림하는 두려운 대상으로서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땅에 대한 사상에는 서민적인 분위기와 함께 포용적인 온화함을 느끼게 해준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흙을 수호신격으로 여기며, 대지(땅)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겼다. 이것을 지모신관(地母神觀)이라 하는데, 지모는 모든 사물의 생명적 근원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간다는 이치이다. 이 지모사상은 농경사상에서 발생되며 풍요를 기원한다. 땅은 더없이 은혜로운 존재로 인식되어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니, 아이가 어머니의 젖으로 자라듯이 천지의 젖인 곡식에 의해 인간들이 양육된다. 즉, 땅을 어머니와 같이 여겼으며, 이 어머니 대지야말로 생명을 잉태하여 낳고 무한한 포용성으로 참아내며 길러주는 생명의 근원임을 깨우치게 한다.

땅은 정직하며 순박하다. 땅을 밟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땅을 닮아야 한다. 땅은 거짓 없이, 서로 용서하며 베풀며 사랑할 줄 아는 우리 사람들의 모습이다.

땅은 우리 민족들에게 있어 기복(祈福)의 대상이었고 재산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흙을 쓸어 버리면 복이 나간다고 여겨서 마당을 쓸 때도 집안 쪽으로 쓸어야 했다. 해월 선생은 땅의 소중함을 어린아이가 지나가는 발소리에도 놀라 자기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어린이의 발소리에 내 가슴이 아파왔다고 표현했다.

잔설이 남아있는 땅 위로 싹을 내민 잎을 보고 있노라면 땅을 울리는 작은 충격에도 가슴 아파했던 해월 선생을 떠올리며 새삼 ‘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신(神)이시여, 이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축복해주소서!

허정현 신부 (수원교구 당수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