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마르코복음서(50)

입력일 2007-01-01 수정일 20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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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두려움 벗어 던지고

나의 현실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마르코 복음 말씀 나누기를 마치며

어느 덧 한 해가 훌쩍 지나 작별의 인사를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애초의 마음은 차근차근 네 복음서에 대한 묵상을 차례로 해 가는 것이었는데, 저의 호흡으로는 좀 숨이 차서 아무래도 쉬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동행해 주셨던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성경 읽기를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영적 지혜가 쑥쑥 자라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마르코 복음은 언제나 저희의 부족한 믿음을 일깨우며 삶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마르코 복음서 전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십자가를 향한 우리의 목표를 잃지 않고 단숨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어떤 긴장감과 비장한 각오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로 번번이 넘어지며 딴전을 피우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결코 어리석은 제자들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 향유를 부어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여인, 부활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여인들처럼 인내와 용기로써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사 하고 청해봅니다.

복음서를 해설하는 글을 쓰면서 저도 모르게 문체가 간결해지고 아무런 미사여구(美辭麗句) 없이 내용의 골자만 담대하게 전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의 믿음이 씩씩하고 굳건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용기가 부족하여 혹시라도 제 삶의 길에서 십자가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드럽게 개인적인 묵상이나 느낌을 충분히 담아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멀찍이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막연한 두려움에 질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나의 현실로 꽉 끌어안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용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관념 안에서 십자가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정면으로 싸워 이기려는 굳은 의지 말입니다.

얼마 전 한 후배에게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놀라운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고교생인 맏아들이 학교 선배에게 산으로 끌려가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고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성한 데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온 몸에 피멍이 들고, 피아노를 전공하려는 자식의 으깨진 손가락 마디마디를 보며 순간 만감이 교차되었다고 합니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 폭력을 휘두른 아이에 대한 분노 등. 그러나 만사를 뒤로 하고 그저 자식의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마치 갓난아기 다루듯이 정성껏 치료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가 자기 아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처럼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면서, 치욕과 분노로 절망하며 방황하던 아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기적처럼 일어서더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바로 이렇게 상처와 고통, 그리고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생명이 아닐까요?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고 완전히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은 한 짝인가 봅니다.

부활의 체험은 한 여인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났다는 강생의 신비로 이어집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나는 아기처럼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자라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 하느님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마태 1, 23).

엄마 뱃속의 아기는 엄마와 구별되는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와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존재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이렇게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6, 5)

세상 한 가운데 임하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사랑으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 안에 탄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