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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75.친환경·친인간적 문화

입력일 2006-12-17 수정일 200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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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문화’ 정립에 앞장서야

한국사회에서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된 데에는 작년의 황우석 사태가 큰 역할을 했다. 줄기세포 논쟁에서 인권과 생명존중에 대한 논의는 물론이고, 멀리는 국익을 둘러싼 논쟁 등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등 근대 문화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교회에서 생명교육을 위한 토대를 만들고, 생명연구에 교회의 역량을 결집시키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2007년도 서울대교구 사목교서가 ‘생명을 선포하는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후기 자본주의 문화에서 보듯이 표피적인 근대의 철학이 과잉 작용하는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의 과제는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살리는 문화’를 가꾸어가는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복음 사건이란 다른 말로 생명에 대한 사랑과 생명을 살리려는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드러난 역사하심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진정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과제이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위한 일은 결코 적지 않다.

가깝게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생명파괴 현상을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가 벌리는 ‘탯줄혈액 기증운동’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지속적으로 생명과학의 반인간적이며 반생명적인 움직임을 경계하고 이러한 과학의 발전이 진정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발전하도록 이끌어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와 이를 수행할 연구와 교육의 기관을 설립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생명에 대한 당위적이며 윤리적인 선언으로는 생명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올바르게 대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를 위해 생명에 대해 존재론적이며 초월론적으로 연구하는 신학과 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연구와 협력이 요구된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문제는 단순히 과학의 차원을 넘어 인간 생명 모두를 문제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놀라운 업적은 마침내 생명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존재론적이며 초월론적 층위에 대해 무지한 맹목적 과학의 질주는 위험하다 못해 극단적일 경우 생명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세기의 환경문제가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생태계와 생명의 터전인 환경세계의 문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환경문제는 궁극적으로 생명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살리는 문화와 사유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작업이 절실하다.

생명을 이해하는 사유 패러다임을 형성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임의 문화에 대항하여 살림의 문화를 정립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것은 생명철학적 작업을 통해 현대의 반인간적 문화 전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하며, 생명의 원리에 바탕한 철학의 사유체계를 형성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생명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하고, 과장한 표현이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은 나의 생명이며 우리의 생명이고, 우주 전체의 생명이다.

생명에 관한 한 잘못이란 말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의 죽음과 파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이나 이종간 교잡 등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지, 또는 우리 모두가 파멸에 이르게 될 지는 21세기 과학기술과 문화를 살펴볼 때, 놀랍게도 그 일은 우리에게 달려있음이 명백하다. 생명의 문화와 사유체계를 정립하는 일을 보지못하고 단지 지난 세월의 틀에만 메달려 생명의 파멸을 지켜만 볼 것인가. 생명을 살리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신승환(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