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마르코복음서(48)

입력일 2006-12-17 수정일 200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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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당하며 하느님께 절규한 예수

대답의 부재는 ‘십자가 승리’ 예고

9. 숨을 거두심 (15, 33~41)

이제 예수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절정의 시각에 이르렀다.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듯 정오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된다. “그날에 나는 한낮에 해가 지게 하고 대낮에 땅이 캄캄하게 하리라”(아모 8, 9)는 아모스 예언자의 ‘주님의 날’ 예고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아람어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곧“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탄원하신다.

절망적인 심경의 토로 같은 이 말은 탄원기도인 시편 22편의 한 대목으로, 표면적으로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을 버렸다는 고독감과 절망감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그러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매달려 절규하고 그분 안에 의탁하는 지극한 신뢰심을 보여주는 기도이다.

철저한 고독의 심연 속에서 대답 없는 부재의 하느님께 절규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의 승리가 예고된다. 십자가 신앙은 어떠한 고통과 죽음의 절망도 하느님과 인간을 떼어놓지 못하리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절규를 듣고 있는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완고하고 비정하다. 그들은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갈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대면서, 행여 엘리야가 와서 기적적인 구출을 하는가 보자고 조롱한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예수님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가 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하느님 앞에 홀로 서 있는 예수님의 고독이 극대화된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37절)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장엄하고도 간결하게 선언된다. 바로 이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고,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던 로마인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고 고백한다. 복음서를 통틀어 지금까지 메시아 비밀로 감추어졌던 예수님의 정체가 만천하에 환히 드러나는 것이다.

대제관 홀로 그것도 일 년에 딱 한번, 속죄의 날에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없어짐으로써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십자가 사건의 증인들로 여성들이 남아 있다. 남자 제자들은 모두 떠난 자리를 여제자들이 멀리서나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는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만이 참제자라고 보고 여인들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각시킨다.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된 여성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 등이다.(40절)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고, 그 밖에도 예루살렘에 올라 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41절) ‘따르다’와 ‘시중들다’는 제자직분의 내용을 고유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이다.

10. 묻히심 (15, 42~47)

수난사화에 이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례 장면이 뒤따른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앞으로 있을 빈 무덤 사화와 부활 선포를 대비하도록 준비시킨다.

최고의회 의원 중의 하나였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달라고 청한다.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은 당일에 묻으라는 율법 규정에 따라(신명 21, 22~23) 사형수의 시신을 당일에 묻는 것이 팔레스티나의 관례였던 것이다.

빌라도는 유다인의 관행을 존중하여 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요셉에게 시신을 내준다.(44~45절)

일몰과 더불어 시작될 안식일 겸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기 전, 서둘러 장례를 치르려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아마포로 싸서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를 돌로 막아 놓는다.(46절) 장례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서둘러 짧은 시간에 약식으로 치러진 장례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안장되시는 것을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안장의 증인이 될 뿐 아니라, 앞으로 부활의 증인이 됨으로써 참제자의 직분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