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왕 사칭한 국사범으로 몰려
억울한 십자가형 선고 받는 예수
7. 발라도 앞에서의 재판 (15, 1~20)
대사제 가야파의 집에서 밤새 신문(訊問)을 받으신 예수님은 금요일 새벽 로마 총독 빌라도 앞으로 압송된다. 사형언도와 집행권이 없었던 유다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처형하려고 로마 법정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로마 관청은 아침 6시경 일출 때부터 사무를 보았다니 예수 압송 시간과 일치한다. 총독 앞에서도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이신지 그 정체가 드러난다.
빌라도의 신문 (1~5절)
유다 지방을 다스리던 다섯 번째 로마 총독이었던 본시오 빌라도(재임 기간 서기 26~36년)는 평상시엔 지중해변 항구 도시 가이사리아에 상주하다가 축제기간이 되면 예루살렘에 와서 정무를 보았다.
1세기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와 필로의 글에는 빌라도가 잔인하고 독단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복음사가들은 그에게 자못 동정적이다.
빌라도가 유다 지도자들과 군중들의 압력에 떠밀려 마지못해 예수를 처형했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2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유다인이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2b절)
듣기에 따라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자아의식을 지니셨지만(14, 62), 최고의회나 빌라도가 생각하는 정치적 메시아는 아니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소하고, 빌라도는 예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로마인의 입장에서는 피지배국인 이스라엘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으므로,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왕을 사칭했노라고 국사범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고발자들의 소란스런 거짓말 속에서 예수님의 침묵은 고난 받는‘야훼의 종’을 떠올리게 한다.(이사 53, 7)
사형 선고를 받으심 (6~15절)
죄인 하나를 석방하는 로마의 축제 관례에 따라 군중은 총독에게 예년처럼 죄수 하나를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하고 묻는다.(9~10절)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한다. 바라빠는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7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바라빠 역시 여느 강도나 범법자가 아니라, 로마 점령군에 대한 반란군의 주도자였다고 짐작된다.
빌라도의 둘째 질문은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12절)로 변한다. 이에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고 거듭 소리 지른다.(13절)
빌라도는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14절) 하고 예수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시도하지만, 빌라도의 항변은 군중의 함성에 압도된다. 그는 예수를 풀어줄 경우, 황제를 배척했다고 자신을 고발할세라 예수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십자가형에 처하기로 타협한다.
정의를 수호하기를 포기한 지도자는 더 이상 아무 힘이 없고, 사건의 소요 속에서 예수님 대신 바라빠가 사면된다. 이제 예수님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메시아로서 홀로 십자가의 길에 들어선다. 십자가형은 맹수형, 화형과 더불어 노예나 식민지인에게 내려지던 가장 참혹한 형벌중의 하나였다.
유다인 왕에 대한 로마 군사들의 조롱과 학대 (16~20절)
예수님께서는 총독으로부터 십자가형 언도를 받은 다음, 로마 형법에 따라 총독 관저 앞 광장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편태와 조롱을 당하신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서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하고 외치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는 흉내를 내는가 하면,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조롱한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고통스런 채찍질이 가차 없이 내려지면서 형장으로 옮겨진다. 유다인들은 가장 많이 때릴 때 39대까지 때린 데 비해 로마인들은 마음내키는 대로 때렸다고 하니,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끔찍한 편태 장면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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