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차동엽 신부의 새시대 교회가 나아갈 길 (9) 여성입지의 현실화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입력일 2006-11-15 수정일 2006-11-15 발행일 2002-02-03 제 228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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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20세기의 시대 정신이었던 「평등」이념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고 21세기를 맞이하였다. 21세기형 산업인 최첨단 정보통신 분야에 있어서는 선진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두권을 각축할 수준에 이르렀지만 인류 문명의 최고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평등문화」의 창달에 있어서는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회에서 여성이 함께 일하고 지도력을 행사하고 각종의사결정권에 참여하는 정도를 통계에 의존하여 측정한 한국의 여성권한척도(GEM : Gender Empowerment Measure)는 2000년도 유엔의 발표에 의하면 70개국 중 63위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1999년 유엔인권이사회와 2001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의는 부계혈통만 인정하는 호주제와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여아낙태 실태 등이 한국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를 반영하는 반인륜적 처사로서 광범위한 국가 정책 및 대중 캠페인을 통하여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선진대열의 여러 나라들은 이미 1985년 유엔 여성 지위위원회의와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1995년 북경)에서 채택된 행동강령에 입각하여 여성정책 주류화, 나아가 여성의 주류화(主流化:Gender Mainstreaming)를 추진하여 왔다. 즉 그동안 억압되어왔던 여성의 잠재능력을 계발하여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익과 참여를 증진시켜 나아감으로써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게 한다는 정책 및 운동을 전개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한국정부가 1985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조약」협약국으로 가입하고 「여성발전기본법」을 만들어 여성정책을 시행해왔고,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익 및 참여를 증진시키고 추진하도록 여성부를 출범시킴과 함께 여성을 위해 더 많은 예산 배정에 노력을 기울여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실은 아직도 미약하여 한국사회전반에서의 「평등문화」는 세계 기구들의 지적대로 아직도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2000년 현재 한국천주교회의 여성 구성비율이 약 60%에 이르지만 대부분 하부 단체의 단체장을 맡고 있고 실질적으로 본당 운영과 관련된 사목회의 경우는 거의 남성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근래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기혼중산층 전업주부 중심의 교회 정책으로 인하여 고학력층, 저학력층, 직장 여성, 하류층 여성 등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사목적 배려는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새 시대 한국 천주교회가 갈 길 「여성입지의 현실화」는 위에서 언급된 교회 안팎의 실태에 대한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여성의 입지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보조를 맞춤과 동시에 사회,문화적 또는 교회 내적인 「현실」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접근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이미 40년 전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제29항에서는 남녀의 명백한 「기본적 평등」이 천명되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88년 발표한 사도직 서한인 「여성의 존엄」에서 『여성들의 소명이 완전히 인정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고 또 실제로 도래하였다. 이제 여성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여태까지 획득한 적이 없었던 지대한 세력과 영향력과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가 매우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시기에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된 여성들이 인간성의 상실을 막는 데 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권고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여성을 남성의 내조자 정도로 여기던 관점을 탈피하여 함께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로 존중하고, 동등하게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며 그 성취감 또한 함께 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의식이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천주교회는 FABC(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권고를 따라 2001년 3월 「여성소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 후속조치로서 이미 몇몇 교구에서 교구 여성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존의 여성단체들을 새롭게 규합하여 여성지도력 향상 및 소외된 여성을 위한 사목적 지원계획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희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당 차원에서도 여성임원 할당을 적절히 제도화해주고 여러 여성층에게 고루 사목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직적인 보완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여성입지의 현실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종래의 남녀 역할 분담을 새롭게 바라볼 줄 아는 의식(意識)전환의 「새 술」과 종래의 관행을 탈피한 제도개선의 「새 부대」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친히 그 당시의 차별적인 문화구조 속에서도 여성을 구원사업의 협력자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차동엽 신부(인천교구 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