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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73.이 시대의 여행과 문화

입력일 2006-11-19 수정일 200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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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 넓히는 여행문화 필요"

이 시대에 출현한 두드러진 문화현상의 하나로 ‘여행’을 들 수 있다. 이제는 상당히 보편화된 이 문화는 그러나 한 세대 전만해도 극히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의식주가 넉넉하지 못하여 여유와 여가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교통망과 운송수단조차 발달하지 못해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어디에 무슨 볼거리가 있고,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근접할 수 있는지 등등에 관한 정보도 없어서 여행이나 관광이란 해외는 물론, 나라 안에서조차 일반적으로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기껏해야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2박3일 완행열차 타고 몇 백 명이 우르르 다녀오거나, 신혼여행으로 절약형은 온양온천, 호화형은 제주도를 큰마음 먹고(?) 선택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러 사정으로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떠나는 척만 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해외여행은 국가의 시책으로도 금지였다. 그래서 부부가 동시에 외국에 나갈 수 없었고, 후에 좀 완화된 법이 부부 모두 60세가 넘으면 함께 외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외화의 유출을 막는다는 근검절약 정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역사를 공부하는 사학도(史學徒)들은 봄, 가을로 한 차례 씩 고적답사를 다녔다.

한 번에 강원도와 경상도, 혹은 충청도와 전라도 등을 묶어서 답사했는데, 지금 같은 대절 전세 버스는 있지도 않았으려니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도리어 하루 숙박비를 절약하느라고 서울역에서 밤 기차 타고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하였다.

털털거리는 시골 버스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눈썹에 먼지가 하얗게 앉았는데, 그 얼굴로 길도 없는 야산을 헤쳐 올라가 천년 비바람을 이기고 서 있는 장한 한 기의 아름다운 삼층 석탑을 만나면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곤 하였다.

세계사에 유례없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그 위에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기도 한 우리의 민족적 기질은 어느 시점에 마치 봇물 터지 듯 일제히 우리 강산 방방곡곡, 그리고서 곧 이웃 나라로 진출하며 여행을 하나의 보편적 국민문화현상으로 만들었다. 봄에는 꽃구경, 여름에는 바캉스, 가을에는 단풍구경, 겨울에는 설경을 보러 다니고, 지금은 실크로드와 앙코르 와트, 터키가 그 물결의 한가운데 있다. 우리 교회의 국내, 해외 성지순례도 이 시대의 이 문화가 탄생시킨 아이템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여정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배우는가? 아름답게 만발한 꽃을 보고, 넓고 푸른 호수를 보고, 불타는 단풍을 본다. 파리의 에펠탑과 베르사유 궁전, 로마의 원형 경기장, 북경의 자금성을 구경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사실은 여행사가 보여주는 것을 주제도 목적의식도 없이 잡탕식으로 스쳐 구경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다.

그에 비하면 성지 순례는 한층 성숙된 형태의 여행이다. 우선 목적이 뚜렷하다.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선택하여 순례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하고, 신심을 다지기 때문이다. 그 성격도 영성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가볍고 행락적이며 소비적인 일체의 것을 배제해서 대단히 엄숙하고 건전하다.

그러나 순례여행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역시 오로지 목적에 맞춘다는 편협한 독선에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단지 ‘우리 종교의 유물과 유적’이 아니라고 해서 관심과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인데, 이 또한 역사가 주는 배움의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무지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여행이란 근본적으로는 문화를 시찰하는 것이며, 부차적으로는 풍광과 풍토에 직접 몸담으며 완상(玩賞)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여행문화의 의의란 인류가 역사 속에서 창조해낸 정신적, 물질적 문명과 문화를 접하며 그 본연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그에서 무엇인가를 배워 우리가 만들어 가는 이 시대의 역사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활성화되고 있는 우리교회의 국내와 해외 성지순례도 이 시대 이 문화의 의미와 그 의의를 모범적으로 선도할 인식과 의식을 갖기를 기대한다.

장정란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