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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72.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입력일 2006-11-12 수정일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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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친숙한 종교로 정착해야

토착화(inculturation)는 현대 그리스도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주제이다. 각 지역 문화의 다원성이 강조되면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각 지역 문화 안에서 적절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문제는 절실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살아있는 의미를 주기 위해서는 복음의 내용이 각 지역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토착화라는 용어에 대한 재고(再考)를 요구하기도 한다. “토착화라는 용어는 복음이 이미 입고 있었던 문화적인 옷을 벗겨내고(exculturation) 새 문화권에 이식한다는 뜻을 지닌다.

그런데 문화로부터 순수 복음의 추출, 곧 복음문화의 탈문화화(exculturation)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데에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면서, 사실 선행되어야 할 탈문화화를 전제하고 있는 토착화라는 용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복음을 ‘씨앗’으로 생각하고 문화를 ‘밭(토양)’으로 생각하는 토착화의 사고 구조 안에서는 아무래도 문화 자체에 서려 있는 계시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차동엽, 「공동체 토착화 논의의 종합과 전망」 『공동체관의 토착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년, 289쪽)

현재 토착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이의가 없는 듯하다. 문제는 토착화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어떤 것들을 추진해야하는지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문제의 복잡함을 조금 단순화하기 위해서 토착화 담론이 공유하고 있는 내용과 그 의의를 나름대로 표현해본다.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는 그리스도교 복음이 지니는 ‘보편성’과 ‘특수성’ 두 측면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인류 전체에게 의미를 주는 진리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닌다. 동시에 그리스도교 복음을 담아내고 있는 형식상의 내용은 근동 지역의 문화와 서구 문화의 특성을 반영하여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닌다.

토착화와 보다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는 것은 특수성이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내용은 각 지역 문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의 ‘해석’이 필요하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리스도교 복음이 이질적이고 낯선 형태로 남아 있을 때, 그리스도교 복음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토착화를 쉽게 표현하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한국인의 현재 삶에 익숙한 형식과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토착화는 곧 ‘한국화’이고 ‘오늘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이런 의미에서의 ‘한국화’를 이미 몇 번 경험했다. 유교·불교·도교는 분명 중국이나 인도 문화의 특성을 반영하여 형성되었다. 한국인은 외래종교로서의 유교·불교·도교를 수입하여 ‘한국화’하였고 오늘날 삶에 익숙한 종교가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교도 유·불·도교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삶에 익숙한 종교로 ‘한국화’해야 한다. 그리스도교도 이들 종교와 더불어 한국 종교전통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는 바로 이러한 ‘한국화’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한국종교’라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만의’ 또는 ‘고유하게 한국적인’ 종교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의 한국종교는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 한국 종교전통의 내용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무교(巫敎), 유교, 불교, 도교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외래종교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종교’의 개념은 그 형성 기원을 기준으로 설정하기보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해오면서 한국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깊은 관련을 형성해오고 있는 종교전통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교, 유교, 불교, 도교 등은 이미 한국 종교전통으로서 충분히 자리매김했고, 이제 그리스도교도 온전한 한국 종교전통으로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한국화’의 의미인 것이다.

오지섭(서강대 종교학과 대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