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마르코 복음서(43)

입력일 2006-11-12 수정일 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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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피하고픈 인간적 욕구 극복

깨어 기도하며 하느님 뜻에 순명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배신하리라고 예고하심 (14, 27~31)

앞서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신(14, 18~21) 예수님께서는 이제 다른 제자들마저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즈카 13, 7)는 성경 기록대로이다.

그러나 즈카르야 예언자의 비관적 전망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고 희망의 말씀을 주신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신 곳이다.

베드로는 모든 이가 예수님을 배신할지라도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제자라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30절)라며, 당신이 처하실 철저한 고립의 상황을 예고하신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스승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완강하게 부인하지만, 그럴수록 말에 힘이 없어진다. 나약한 인간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4.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심 (14, 32~42)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만찬을 마치시고 올리브 산 기슭 겟세마니라는 곳에 이르신다. (26절) 다가올 죽음의 잔을 앞두고 극도로 번민하시며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마르코는 예수님께서도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셨고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34절)고 말씀하셨다고 보도한다. 증인 역할을 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하는”(38절)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세 차례 기도하시고 세 차례 제자들에게 돌아오셨다는 마르코의 삼 단계 구성법은 깨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잠든 제자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잠은 수난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제자들이 유혹의 상황에 가까이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36절)

예수님의 간구는 평소 예수님의 기도 내용을 잘 표현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람어 아빠(abba)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독보적인 호칭이었다. 아빠는 본디 아기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말로, 지엄하신 하느님을 유다인들은 감히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겟세마니에서의 갈등 상황은 수난과 죽음의 잔이 치워지기를, 수난 시간이 비켜가기를 간청하는 인간적인 욕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자신을 내어 놓는 순명의 태도를 보여 준다.

결국 예수님의 기도는 임박한 수난의 시간과 죽음의 잔 앞에서 일대 결단을 하기 위한 것으로 죽음의 필연성을 보며, 하느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는 데 우선권을 둔다. 이는 신앙인들의 기도 자세로서 예수님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그의 행동 안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이제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 아빠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예수님의 겟세마니 간구는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어 왔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당부는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거듭 촉구되는 말씀이시다. 유혹의 상황은 매일 우리에게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는 악의 힘이기도 하다.

예수 추종을 통한 하느님의 뜻의 실천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