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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69.생명교육의 목표와 내용

입력일 2006-10-22 수정일 200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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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모든 창조된 생명체의 것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원리가 DNA와 그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에 있다는 발견은 사실 엄청난 충격을 지닌 선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론 1953년의 유전자 이중나선구조 해명 이후의 변화는 더 이상 생명의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생명이해의 패러다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이해체계와 존재 근거 전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죽임의 문화’ 반성

서구의 근대 이래 만연한 자본주의 문화와 물질주의, 그에 덧붙혀 인간 존재와 의미, 근원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왜곡시키는 과잉근대의 문화는 생명을 살리는 문제가 궁극적으로 현대의 가장 큰 문제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로 계몽주의 이래 현대의 문화는 인간의 존재론적 지평과 초월적 의미를 왜곡함으로써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문화에 만연한 ‘죽임의 문화’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에서는 지난 10월 11일부터 제1기 ‘참생명학교 생명윤리’강좌를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관점에서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생명교육을 이끌어가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일차적으로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생명자체를 파괴하는 생명과학의 일면적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할 것이다. 자신이 나아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유하지 않는 과학’의 움직임 때문에 올바르게 발전해야할 생명과학조차 잘못된 정책과 일반인의 편견에 휘둘려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윤리 교육만으로는 오늘날 생명과학이 지닌 다층적 문제를 극복할 수는 없다. 생명존중에 대한 교회의 선언이 우리나라의 일반 문화에 크게 공명을 얻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교회가 선언하는 생명존중의 가르침이 우리 문화의 지평 안에 올바르게 수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대 문화 일반에 대한 반성과 그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문화적 변화에 교회가 기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명의 ‘더불어 있음’

그래서 생명교육은 일차적으로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층위, 이차적으로 죽임의 문화를 극복하고 살림과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적 층위로의 변화, 마지막으로 생명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패러다임에 관한 층위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와 함께 이 모든 작업은 근본적으로 삶의 이성을 넘어 생명의 초월적 영성을 회복하는 선험적 결단에 바탕해서 근거지어져야한다. 예를 들어 생명은 단순히 자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모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하나로 연결된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의 ‘더불어 있음’(공생명의 원리)을 보지 못할 때 우리는 생명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또한 생명은 죽음이 있기에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 없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 마치 암세포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생명이야 말로 반생명적이지 않은가. 죽음을 앞당겨 현재화하는 생명의 원리를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인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생명은 한 순간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35억여 년의 역사를 거쳐 이루어진 역사성을 담고 있다. 이를 해명할 수 있는 작업은 철학과 신학을 비롯한 정신의 학문들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생명이 지닌 내재적 관점에서도 생명교육이 총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제간의 연구가 요구된다. 그것은 철학과 신학은 물론이고, 생명과학기술의 전문지식과 생의윤리분야와 현대문화에 대한 해석학적 작업까지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총체적인 것이다. 생명은 바로 나의 생명이고 우리의 생명이며, 나아가 모든 창조된 생명체들의 생명이다.

근대의 분과학문이 흩어놓은 생명 연구를 근대 이후의 총체적 연구를 통해 극복하고, 잊혀진 영성의 세계를 복원하는 것이 생명연구와 교육을 통해 달성해야할 목표일 것이다.

신승환(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