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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평신도] 4.한국교회 평신도의 명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6-10-01 수정일 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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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자발적 신앙 계승하자”

신자들 열정으로 한국교회 눈부신 성장

권위주의적 관행 떨치려는 적극성 필요

이미 한국교회의 가장 독특하면서도 최고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컬어지는 것 중의 하나는 한국교회가 평신도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진리 탐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결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며 당대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참 진리는 무엇인가를 궁구하던 일단의 평신도들에 의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종종 평신도의 소극적인 신앙과 생활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우리는 이미 우리 교회의 역사 안에 그 풍부한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비판적 성찰이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세계 교회 안에서도 그 자발성과 헌신은 다른 어느 교회의 평신도들에 못지 않다. 우리나라를 찾는 교황청과 해외교회의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에 감탄하면서, 그 바탕에는 평신도들의 열성과 헌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쉽게 알아채곤 한다.

텅텅 비어가는 서구 교회에 비해 한국에서는 성당마다 신자들로 가득하고, 다양한 신심행사와 대규모 교육 프로그램에도 많은 신자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해외교회 인사들은 부러움을 표시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봐도 평신도들의 뜨거운 열성, 열일 제쳐두고 성당 행사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평신도들의 열의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이미 그 전통은 자발적인 신앙의 수용을 넘어서, 박해 시기를 지나오며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신앙을 지켜낸 위대한 신앙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통해 이어져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영성인 순교 영성의 전통은 바로 그러한 정신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일깨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들의 이러한 열의에 불을 질렀다. 이제 평신도들은 단지 교회 생활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신에도 나섰다.

민주화 운동의 고난이 가득한 길에서도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정의를 수호하려는 많은 사제들과 함께 역사의 주역으로 나섰다. 평신도들의 왕성한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제 단체들이다. 본당 생활에서 단지 전례에 참여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제 단체에 가입해 열렬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더욱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평신도들은 그 고유의 활력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잃어가고 있다.

공의회 이후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하느님 백성의 일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로서 평신도의 위상과 정체성이 희미해져갔다. 신앙생활에서도 냉담자의 증가, 수동적인 성사생활 등 신앙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평신도들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발적 신앙생활의 독특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과연 오늘날의 평신도들의 의식 속에서 과연 얼마나 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 책임은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평신도의 자발성이 발휘될 수 없는 교회 제도와 구조, 관행은 교회의 발전까지도 저해한다. 되풀이되는 권위주의적 관행은 평신도로 하여금 소극적인 자세를 야기하고 결국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자리잡게 만든다.

한국교회 평신도의 모습은 명암을 함께 갖고 있다. 그 놀라울 정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목을 잡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관행이 평신도가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려는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