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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67.자연 속의 생명

입력일 2006-10-01 수정일 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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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피조물은 소중하다”

현대의 견해들이 오히려 비과학적이다

과거에는 돌 하나 풀 한 뿌리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였고, 다양한 생물들 가운데 특히 인간의 생명만이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는 자연 환경의 파괴였으며, 이것은 다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졌다. 자연환경의 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은 생태계의 보존을 우선시하는 생태학적 자연관을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거의 자연관은 자연을 경외시하는 마음에서 나온 애타적인 자연관인 반면에, 현대의 자연관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이기적인 자연관이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과거의 많은 견해들을 비과학적이고 미성숙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해 버리려고 했지만,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스스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오늘날의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오히려 근대 이후의 견해들이 비과학적이고 미성숙한 사고로 치부될만하다.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살던 과거의 지혜를 배워야 할 상황이다.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목적론’이란 이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서양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바로 그런 지혜를 가졌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무생물과 생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물이 본성을 가지며, 또한 그 본성을 최대한으로 실현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생각한다. 길 위를 구르는 돌멩이와 같은 무생물은 물론이고 식물을 비롯한 생물이 모두 그 나름대로의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는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은 자신의 능력을 모두 최대한으로 실현할 때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외적 조건이 제공되어야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호흡해야 하며,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될 때에야 비로소 생명체가 그 나름대로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느님도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을 독불장군으로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며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어우러질 때 우리의 삶은 더 복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진실을 잊거나 외면하고 있다.

생명의 보존은 생명체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생명체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결국 나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해야만 한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헛된 일을 하시지 않는다.”(이사야 45, 18)고 했다. 창조된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는 하느님이 의도한 그 나름대로의 목적과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 하나로부터의 출발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간혹 사람들은 모든 인류가 또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움직이길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에게 미루거나 또는 우리가 한 마음을 지닐 때까지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보면서도 모든 의료진과 의료장비가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 하나로부터의 출발. 그것이 바로 나의 생명을 살리고, 우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생명체 자체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미시적인 관점도 중요하지만, 자연 속에 위치한 우리의 상황을 파악하는 거시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유원기(계명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