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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문화] 66.총체적인 생명 교육 필요하다

입력일 2006-09-24 수정일 200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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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의미 깨닫게하는 것이 우선

우리 시대의 문화는 과학기술주의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과학기술주의는 17세기 이래 근대 유럽의 철학이 이룩한 독특한 체계이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을 대당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이해한다. 자연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는 대상이 되며, 학문은 자연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고유한 방법론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

죽음의 문화 확산

결국 자연과 인간의 동일한 존재론적 근거는 사라지고, 자연 세계에 충만하던 영성은 사라지기에 이른다. 근대 이외의 시대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세계의 철학이나 또는 다른 인간 공동체가 지녔던 자연과의 공존이란 생각은 여기서는 자리할 곳이 없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학기술주의 문화가 인간의 생명조차도 같은 방법론으로 이해한다는 데 있다. 그에 따라 우리 자신의 것이며,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생명이 소외되고 억압되는 것이다. 그러한 문화 현상이 오늘날 죽음의 문화로 나타나며, 생명과학이라 이름하는 영역은 이런 현상을 마치 가치중립적인 것인양 확산시키고 있다.

이에 덧붙혀 서구 근대의 천박한 물질주의에 근거한 과도한 자본주의 문화와 결합하여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생명은 과학기술의 대상을 넘어 자본의 대상으로 까지 격하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생명산업’, ‘생명공학’ 따위의 말이다. 생명을 산업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삼고, 건축공학이나 토목공학처럼 공학기술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가 여기에 담겨있지 않은가.

학문적으로도 생명학이 유사영성의 대상이거나, 생태학의 또 다른 이름으로, 심지어는 생명과학을 통한 통합학문의 대명사로 강변되고 있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진화생물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근대 이래 분화된 여러 학문을 통합하는 통섭학(consilience)을 주창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논거의 출발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학문은 철저히 자연과학적이며 반형이상학적이기에 인간의 초월적 의미를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학문적 경향이 서구 근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한 명문대학에서는 최근 통섭학을 연구하는 전담기구를 세우기도 했다.

반생명적 연구 비판

생명이 생명으로 존중되고, 하느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생명에 담긴 창조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총체적인 교육이 시급하다. 단순히 일부 생명과학에 담긴 일면적인 반생명적 경향과 윤리 문제에 치중하여 사안별로 대처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다. 이제는 개별 윤리 문제나 몇 명의 학자들이 상대하기에는 이들의 영향력이 너무도 커져버린 것이다. 지난 연말의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수많은 교우들조차 이런 문제에 담겨있는 심각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생명과학의 문제와 생명윤리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하는 데 교회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생명과학을 비판하는 연구자들 가운데 교계내 인사들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의 공식적 선언은 물론이고, 작년에 출범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가톨릭대학교에도 협동과정이 마련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그 영향력은 너무 미력하다.

그러기에 흩어져 있는 이러한 능력을 결집시키는 일 역시 절실하다. 생명과학과 생명윤리, 죽음의 문화에 대응하는 살림의 문화, 생명을 신학적이며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생명학의 연구를 결집시키고, 그 연구기관을 총괄해야할 것이다. 개별적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넘어 현대문화에 담긴 반생명적 생명연구를 비판하고, 그에 올바른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교회의 시대적 사명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생명은 소외되고 바로 우리 자신인 생명은 거대한 죽음의 문화에 의해 압살될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금 여기에서의 소명은 생명을 살리는 문화와 학문에 매진하는 시대적 소명을 달성하는 데 있을 것이다.

신승환(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