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시대 이 문화] 65.가톨릭 대안교육이란

입력일 2006-09-10 수정일 20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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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는 사랑의 공동체로

“차렷! 선생님께 경례”

칠판 앞에 서면 학급 회장의 구령 소리가 아이들을 흔든다. 인사를 나눈 후 출석을 확인하면서 교사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는 일이다. 이제 됐다 싶어 수업을 시작하지만 그것도 잠시, 10분이 지나면 교실 여기저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하다보면 어떤 날은 큰 물 지나간 들판처럼 될 때도 있다. 무력감과 자괴감이 황토물이 되어 나를 덮친다. ‘가르침의 장(場)’에서는 고뇌와 갈등이 계속되고, ‘배움의 장(場)’은 인내와 고통의 연속이다.

교육은 인격적 만남

‘왜 이렇게 됐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교사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하여 ‘나는 누구인가?’에까지 이른다. 그렇다.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물음은 교육의 모든 주체가 해야 하지만, 특히 교사에게는 더욱 더 중요하다. 그 물음은 교사의 고민을 존재의 근원으로까지 연결시킨다.

그로부터 교사로서의 올바른 자각이 있게 되고, 삶의 방향, 역할 등이 바르게, 그리고 힘차게 정립돼 나온다.

오늘의 교육병을 치유함에 있어서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오는 힘을 활용하는 방안은 어떨까?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이래 돈보스꼬(Don Bosco),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과르디니(Romano Guardini) 등 위대한 교육 선구자들이 그 힘을 활용하여 인간을 사랑하고 변화시켰다. 이들의 교육은 가톨릭 신앙과 이성을 두 축으로 한 것이었다.

그들의 발자취에서 뽑아낼 수 있는 치유성분 가운데 오늘의 우리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일 것이다.

첫째, 교육은 사랑이다. 교육은 ‘나’와 ‘너’의 인격적 만남(과르디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을 풍요롭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인격의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나아가 ‘나’를 ‘공동체’로까지 확산시켜 생명의 관계망을 만들게 한다.

위대한 교육자들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었다. 가르침과 배움의 현장에서 첫 번째 규칙은 사랑이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시작이요 끝이다. 교육의 모든 환경과 노력은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아이들의 책상은 물론 아이들 손에 쥐어지는 놀이 도구까지도 아이들을 위해 고안이 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교사마저도 아이들을 위한 보조적 환경의 하나일 뿐이다.(몬테소리) 위대한 교육자의 삶은 하나같이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진 삶이었다.

셋째, 교사가 학교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누구인가? 교육은 누구의 손끝에서부터 풀리고 누구의 음성을 통해 들려오는가? 사랑은 누구의 마음에서 일어나 누구의 눈빛을 타고 오는가? 흐릿한 발 앞에 진리의 불빛을 비추어 줄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생명으로 엮어주는 이는 누구인가? 고통스럽고 혼란스런 공간을 환희와 사랑, 즐거움과 생기가 넘치는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교육이 살아 움직이고 어떻게 구현되느냐 하는 문제는 결정적으로 교사에게 달려 있다. 교사가 바로 학교이다.

교사가 곧 학교

본질적인 것의 회복, 진정한 가톨릭 정신의 구현보다 더 훌륭한 대안이 어디 있겠는가? 교육의 모든 주체들이 이에 공감하고 일치된 노력을 경주한다면 우리는 다시 ‘학생들 사이에 촘촘한 생명의 그물’(파커 J. 파머)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에 원천을 대고 있는 가톨릭 대안 교육에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절대적인 주인공으로 있다. 그들 곁에는 친절한 도우미, ‘자각하는 교사’가 있고, 그들이 이루는 공동체에는 사랑이라는 혈액이 원기 왕성하게 돈다.

허용준(서울 현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