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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신부이야기] 3.군납 양주 한 병!

최혁순 신부
입력일 2006-04-30 수정일 200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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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 보약보다 좋은거니까 주무시기전에 한잔씩 드셔”

사제로 살면서 곤혹스런 일들이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영명축일 행사가 그 곤혹스런 일들 중 하나다.

신자 분들께서는 본당 신부의 축일이라 해서 많은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신다. 더군다나 사순시기에 내 축일이 있기에 축일행사를 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축일에도 신자분들이 구역별로 음식을 준비하시는 등 수고를 하셨다.

그런데 축일 다음날 할머니 한 분께서 사제관 문을 두드리셨다. 나가보니 할머니께서 축일 날 선물을 드리지 못했다며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신부님! 요거 주무시기 전에 컵으로 한잔씩 드시면 잠도 잘 오고 보약보다 더 좋은거니깐 꼭 드셔”라고 말씀 하셨다.

할머니가 가시고 난 뒤 포장을 풀고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군납 양주 한 병이 들어있었다. 밤잠을 잘 못자는 본당신부를 위해 할머니께서 선물하신 것이다.

군납 양주 한 병을 들고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어떠한 보약도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매일 밤 양주 한잔씩을 먹어야하는 행복한 고민도 하였다.

본당신부 생활을 하다보면 할머니들은 신부에게 애인과 같은 존재이고,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고, 나를 일깨워주는 어린이와 같은 존재이시다. 당신들의 생활이 궁핍해도 신부에게는 좋은 것을 먹이시려는 할머니들이 신부에게는 큰 사랑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무엇인가 베푼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품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늘 베푸는데 망설이고 아까운 마음만 지니게 된다. 베푸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상대방을 타인이 아닌 이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큰 것이 아닐지라도 작은 것에 기뻐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할머니께서 나에게 선사하신 군납 양주 한 병이 작고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선물이 사랑이며, 행복이고, 큰 베품이었다.

부활시기를 살아가면서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늘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그 사랑과 베품을 나 역시 실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아닐까?

겉으로 표현은 잘 못하지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이번 주일미사에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며 늘 신부에게 베푸시는 그 분들의 사랑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최혁순 신부 (춘천교구 현리본당 주임)

최혁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