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수 추기경 시대, 한국교회 과제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6-03-05 수정일 200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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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서임으로 우리나라는 민족 복음화를 넘어서 아시아와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보편교회의 노력에 동참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됨으로써 한국교회는 이제 복수 추기경 시대를 맞게 됐다.

2명의 추기경, 더욱이 아직 선교지역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대륙의 한 지역교회에서 복수 추기경이 배출됐다는 점은 단순히 그 지역교회의 명예나 영광에 그치지 않는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그것은 보편교회 안에서, 세계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규모와 위상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소명을 새롭게 받게 됐음을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지역교회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복음화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추기경의 임명을 계기로 우리는 한국 사회와 국가,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안에서 한국 교회에 요구되는 소명이 과연 무엇인지를 더욱 철저하게 성찰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더욱 철저하게 복음화의 소명을 실천해나가야 한다. 복수 추기경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소명을 부여받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모색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분야로 복수 추기경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의 과제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민족 복음화 넘어 ‘아시아 선교 주역’ 기대

아시아파견 선교사만 212명… 전체 40.2%

해외 선교에 대한 보다 적극적 마인드 필요

1. 아시아 복음화의 소명

정진석 추기경은 임명 후 국내 언론과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막중한 책임을 강조했다.

복수 추기경 30개국뿐

정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추기경을 배출한 전세계 65개국 중에서 2명 이상의 복수 추기경을 보유(?)한 지역교회는 모두 30여개, 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가 경제적, 종교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30위의 국가로 성장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국가의 위상에 걸맞는 선교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추기경의 이같은 발언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제삼천년기 복음화 활동의 지향, 곧 보편교회가 제삼천년기에 주력할 복음화 지역이 아시아 대륙이라는 점을 그대로 반영하고 그 뜻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추기경이라는 존재는 교황과 함께 전세계 교회와 사회의 당면 과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한 교회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교황을 도와 최고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추기경은 전세계 하느님 백성 전체의 선익을 위해서 교황과 보편교회의 최고 정책을 수립하는데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추기경은 민족 복음화를 넘어서 아시아, 나아가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보편교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도록 요청받게 마련이며,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주된 선교 목표가 될 아시아 복음화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보편교회의 추기경으로서도 막중하게 요청되는 소명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정추기경은 아시아 복음화의 관건이 되는 동북아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될 한국교회, 더 구체적으로는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이기에 그 소명은 더욱 강조된다.

아시아 선교 막중한 책임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황의 이번 새 추기경 임명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아시아 대륙에서 3명의 추기경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서 운영하는 아시아 교회 소식지인 ‘아시아 뉴스’의 편집장인 베르나르도 체르벨레라 신부는 이러한 교황의 결정에 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2월 23일자 소식에서 3명의 아시아 추기경 임명 소식을 전하면서 “전통적으로 추기경이 교구장직을 수행해오던 파리, 바르셀로나, 더블린 대신에 홍콩과 서울, 마닐라에서 추기경을 임명했다”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임 교황이 ‘아시아는 제삼천년기를 위한 우리 공통의 과제’라고 한 가르침을 따랐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홍콩교구장인 젠 제키운 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은 중국 복음화를 염두에 둔 것이고, 아시아 전역에 산재해 있는 필리핀 가톨릭 신자들을 통한 아시아 전반의 복음화를 지향해서 마닐라 대교구장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나아가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가정과 생명에 대한 의지와 관심 외에 북한 선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복음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기여도 당연히 고려된다.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의원이며,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인 한홍순 교수는 새 추기경 서임의 의미에 대해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배경을 더욱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회장은 이 글에서 “교황과 교황청이 한국 교회에 거는 기대는 아시아, 특히 동북 아시아의 백성들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명의 바탕에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즉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처음 천년은 교회가 유럽에 뿌리를 내렸고 두 번째 천년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제 세 번째 천년에는 아시아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을 한국교회가 교황을 중심으로 전세계 교회와 함께 해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교황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가 아시아, 동북아 선교의 보루가 되어주기를 기대해왔다. 지난 1992년부터 주한 교황대사는 몽골 대사를 겸임해왔다는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정추기경은 수년 전부터 중국의 신학생을 초청해 한국에서 사제 양성을 받게 했고, 올해 베트남과 방글라데시 신학생들에 대한 사제 양성 계획도 수립돼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범위와 대상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는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자체가 선교 지역으로서 해외선교를 위한 충분한 물적, 인적 토대가 구축돼 있지 못한 상황이고, 국내에도 아직 선교가 필요한 지역이 많고, 선교사가 많이 필요한데 굳이 해외선교에 나서야 하느냐 하는 초보적인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1980년대 초반에 씨앗이 움트기 시작한 한국교회의 해외선교 활동은 이제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의 주역으로 나서도록 요청받는 제삼천년기의 초입에도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불과 이삼십년의 역사에서 한국교회 해외선교활동의 성장은 결코 소홀히 볼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앞으로의 성숙과 성장의 가능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지역 선교 현황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 파견 현황을 보면, 우리의 과제는 더욱 잘 드러난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지역에 파견하고 있는 선교사 수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파견된 전체 선교사 수보다 많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다른 대륙에 비해 아시아에 쏟는 관심과 열의는 크다.

한국가톨릭 해외선교사 교육협의회에 의하면 2005년 10월 30일 현재 한국교회가 아시아에 파견한 선교사 수는 총 212명, 이는 전세계 파견 선교사 527명의 40.2%에 해당한다. 활동은 주로 수도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작은 형제회,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등 총 30여 남녀 수도회가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 18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각 교구에서도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는 교구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 가장 많이 파견

파견국별로 보면 중국의 비중이 단연 높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11명을 비롯해 살레시오회 7명, 서울 성가소비녀회 6명, 예수수도회 6명 등 19개 수도회 및 교구에서 65명을 파견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 선교 비중은 일본과 필리핀의 2배, 인도네시아의 10배, 방글라데시의 20배에 이른다. 중국 이외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는 일본 32명을 비롯해 필리핀 28명, 대만 24명 등이고 몽골과 홍콩,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도 파견돼 있다.

상대적으로 선교 취약 지역인 터키,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에는 각 수도회에서 1명 정도씩이 파견돼 있다. 그 외에 전체 아시아 선교사 중에서 평신도 선교사는 모두 8명으로 일본과 필리핀, 대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 노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해외선교에 대한 인식 문제이다. 여전히 한국 교회의 여러 계층에서 해외선교에 소극적인 마인드가 발견된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이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돌아섰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한국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서로 함께 나누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요청은 조금씩이나마 그 싹을 틔워왔다. 아직은 충분히 열매 맺지 못했던 해외 선교의 씨앗은 이제 새 추기경의 임명으로 도래한 복수 추기경의 시대로써 비옥한 거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아 보편교회로부터 발해진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서 한국 교회의 소명을 이제는 세계와 보편교회로 열린 마음으로써 충분히 열매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명을 완수하는데 있어서 새로 임명된 정진석 추기경의 몫은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