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사회, 교회와 추기경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6-02-27 수정일 200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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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른’이자 국가·사회의 ‘정신적 지주’

과거 군사독재 항거한 시대의 양심

현재 생명·가정 등 사회 문제 선도

미래 양극화 해결하는 리더십 기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국,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대주교를 15명의 새 추기경 중 한 명으로 발표했을 때, 이는 비단 새 추기경의 탄생을 오랫동안 염원해온 한국 천주교회의 기쁨을 넘어섰다. 주요 언론들은 연이어 한국천주교회와 새 추기경 탄생을 톱기사의 자리에 올렸고, 나름대로 그 배경과 의미, 전망을 분석하면서 한국 교회와 새 추기경에 대한 기대를 피력했다.

그러한 기대는 가장 양심적이고 어떤 이해타산에도 얽매이지 않는 집단으로서의 천주교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고, 가장 격동기였던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보여준 양심의 보루로서의 호의적인 이미지에 바탕을 둔 것이다.

발표가 난 후 수일 동안 많은 언론들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서 이같은 기대와 전망을 표시했다. 그 요지는 우선 ‘추기경’이라는 존재가 단지 천주교뿐만 아니라, 사회와 나라의 어른이며, 새 추기경 탄생은 우리 국민 모두의 경사라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23일자 한 칼럼을 통해 “새 추기경을 맞이하는 경사는 결코 교회 안에서만의 축복이 아니다”라며 “새 추기경의 인간적 온기가 이 땅에 잃어버린 사랑과 감사와 평화를 찾게 되기를” 기도하자고 권한다. 같은 신문은 사설에서 “또 한 분의 어른…”이라는 제목으로 그 동안 한국 천주교회와 추기경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국민과 국가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와 축하를 이어서 제안되는 것은 바로 앞으로의 전망이다. 유일한 추기경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교회와 사회 안에서 씨름했던 과제들은 이제 시대의 변화 안에서 또 다른 역할과 책임으로 변화됐다.

중앙일보는 24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핵심은 ‘달라진 시대의 달라진 추기경’이다. 김추기경은 70~80년대의 과제와 힘겨운 씨름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정보화, 경제전쟁 시대다. 사회 양극화, 과거사 논란, 이념 분쟁 등 현안도 수두룩하다. 가톨릭의 수장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표’를 상징해온 추기경이 외면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두 분의 추기경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책임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변화된 것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교회가 격동기를 지나오면서 한국천주교회의 최고 어른인 추기경,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분 뿐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과 행보는 천주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전반으로 그 영향을 미쳤다.

1966년 주교 서품과 함께 마산교구장에 임명됐던 김수환 추기경은 1968년 전격적으로 서울대교구장이 됐고 다음해 48세의 나이로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김추기경이 추기경으로서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 요구된 역할은 실로 막중한 것이었고 가시밭길과 다름이 없었다.

공의회가 사회 정의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새롭게 촉발했거니와 급격한 산업화와 독재의 압박 속에서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들의 극단적 소외 속에서 교회는 사회 정의와 인권 수호를 위한 사회 참여가 곧 시대적 요청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추기경이 서 있었다.

1972년 8월 9일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김 추기경은 7.4 남북공동성명과 8.3 긴급재정명령에 대한 교회 입장을 밝히는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1973년 8월에는 지학순 주교가 구속됐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탄생,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사제들의 체포, 오원춘 사건이 1979년까지 연이어 발생했다.

광주의 비극에서 시작된 80년대, 교회의 민주화 운동은 더욱 가열되고, 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과 관련해 또 다시 신부가 구속되고 8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정부와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김추기경은 수시로 시국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시발로 범국민적 저항이 불붙었고, 언제나 천주교회는 그 핵심에 서 있었고 다시 그 한 가운데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다.

거센 질곡의 민주화 운동 시기를 지나면서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최후의 양심의 보루로 자리잡았다. 이후 어느 정도 정치 사회적인 민주화가 이뤄진 후에도 추기경은 항상 진실과 신념의 마지막 기준이었고, 가장 믿을만한 어른으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자발적인 신앙 공동체로 출발해 혹독한 억압과 박해를 극복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성공적 사례로 손꼽힌다. 더욱이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 종교간 대화와 나눔의 실천 등으로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왔고, 추기경은 항상 그러한 한국 교회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한국교회는 새로운 정체성의 모색 필요성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고도 성장의 시기를 지나온 후 한국 천주교회는 외적 성장에 걸맞는 내적 성숙의 길을 모색해야 했고, 민주화, 사회정의 실현 등 범국가적 범사회적 지향은 생명, 환경, 가정, 영성, 정보화 등등 다양한 사회적 관심으로 사목적 실천의 방향이 다원화됐다. 아울러 한국 사회와 교회의 성장에 걸맞는 보편교회 안에서의 자기 몫을 해야 한다는 인식 역시 폭넓게 확산됐다.

특히 제삼천년기에 들어서면서 보편교회는 아시아 대륙에 보다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첫 번째 천년기에 그리스도교는 유럽 대륙에 뿌리를 내렸고, 두 번째 천년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이제 제삼천년기에 접어들어 보편교회는 아시아의 엄청난 인구와 선교의 가능성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두 번째 추기경으로서 정진석 추기경의 임명으로 도래한 복수 추기경의 시대는 바로 이러한 교회적,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 앞날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청과 보편교회의 기대는 우선 한국 교회가 지닌 독특한 역할과 책임에 주목한다. 제삼천년기 아시아 교회의 중요성, 특히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선교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중요성은 매우 심대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여러 차례 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한국교회, 특히 서울대교구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해왔고, 이번에 새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나서도 자신의 소명은 아시아 선교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족 화해와 북한 복음화가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번에 새 추기경들을 발표하면서 홍콩과 필리핀의 주교들을 함께 새 추기경에 임명했다. 아시아 복음화의 최대 관건인 중국과 관련해 홍콩 주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중국 선교는 한국 교회의 책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중요성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새 추기경의 소임은 이처럼 교회적이거나 선교적인 부분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내적으로는 참된 어른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민주화 운동 시절에 추기경이 양심의 보루였듯이 다원화된 사회 안에서, 양극화와 대립,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새로운 추기경은 참된 원로로서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고 화해시켜야 하는 시대적 요청을 안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 안에서 ‘추기경’이라는 존재와 위치는 단순히 천주교의 지도자를 넘어서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떤 소임이 주어질지라도 새로 추기경에 임명된 정진석 추기경은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는 것이 이번 새 추기경 임명과 함께 나오는 세평이다. 높은 학덕과 온후한 성품으로 새 시대의 새로운 추기경으로 걸어가는 정추기경은 그러나 우리 모든 이의 기도를 청한다.

사진설명

▶단식 농성 중인 농민 방문

▶화훼마을 화재 현장 방문 위로

▶이한열군의 빈소 방문(김수환 추기경)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 캠페인 스티커 부착

▶수해를 입은 경기도 적성지역 방문

▶새 추기경에 서임(정진석 추기경)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