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44】‘사막 교부들의 생애’에서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06-02-26 수정일 200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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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입으로만 바치는 기도가 아닌 선행과 자선이 기도에 수반되고, 기도의 일부분이 돼야 한다. 그림은 조르디노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6일 동안 단식을 한 형제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병자들을 돌본 형제와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본문]

어떤 형제가 노인에게 물음을 던졌다.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한 형제는 독방에서 6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힘든 노동을 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는 비록 단식은 하지 않았지만, 병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떤 형제의 일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드릴까요?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6일 동안 단식을 한 형제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병자들을 돌본 형제와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사막 교부들의 생애’(De vitis patrum) 17, 18

[해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해주는 것, 곧 그리스도인의 삶과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근본은 바로 기도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인과 무신론자들도 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오늘날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매일 매일 기도를 드린다. 자녀들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들의 기도는 가히 눈물겹도록 헌신적이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며 바치는 청원기도도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결코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올바른 기도는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기도가 기도로서만 끝나버린다면 즉, 입으로만 바치는 기도로서만 끝나버린다면, 그 기도는 결코 올바른 기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바쳐야 할 올바른 기도란 무엇일까? 그 해답을 교부들의 가르침 안에서 찾아보자.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는 올바른 기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선행 실천을 강조하였다. 올바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선행이 기도에 수반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선행이 기도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카이사레아의 주교였던 바실리우스도 같은 맥락에서 말한다. “만일 그대가 혼자 산다면, 그대는 누구의 발을 씻어줄 수 있으며, 누구를 돌봐줄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한다 할지라도, 비교할 대상이 누가 있겠습니까?”(대 바실리우스, ‘규칙서’ 7)

혼자 사는 은수자는 비록 혼자서 바치는 기도의 기쁨은 만끽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섬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은수자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바실리우스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는 수도자들의 삶이 혼자 사는 은수자들의 삶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교부들은 한결같이 섬김과 봉사에 담긴 사랑과 애덕의 소명이 기도의 소명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집트 사막의 교부의 가르침도 역시 사랑과 선행의 실천을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선행과 자선을 그 기도에 더해야만 할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설교’ 3, 2) 교부들은 자선과 선행이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정당성을 보증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시도록 만들어준다고 강조하였다.

교회의 가르침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종합해보면,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입으로만 바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 기도가 선행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드러나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식과 가족들만을 위해서 기도를 바친다거나,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청원기도만을 바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다. 기도의 힘으로 선행을 실천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만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기도에는 두 축이 있다. 한 축은 기도이고 다른 한 축은 사랑과 자선과 선행의 실천이다. 이 두 축이 완전히 하나가 될 때,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교부들은 기도와 선행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이 같은 가르침을 말씀하셨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 37∼40)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