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40】사제는 골고타 언덕

배승록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대전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06-01-15 수정일 200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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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해야 하며, 백성들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인도되어야 한다.
“기쁨과 희망의 십자가 세우는 언덕돼야”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사제직’에서

[본문]

하느님께서 주신 사제직

땅 위에서 살고 있는 사제들에게 하늘의 일들을 관리할 책임이 주어졌으니, 그들은 하느님께서 천사들과 대천사들에게도 주지 않으신 권한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 18)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땅의 권한은 육신만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있지만, 하늘의 권한은 영혼과 관계되고 하늘에 도달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니, 사제들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권한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종들의 판단을 견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권한 외에도 다른 권한을 사제들에게 주셨으니,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라고 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권한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심판하는 권한을 아들에게 넘기셨습니다(요한 5, 22). 그리고 사제들이 이 모든 권한을 아들로부터 받은 것입니다(3, 5).

사제의 거룩한 손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요한 3, 5), 주님의 살을 먹지 않고 그분의 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으니(요한 6, 53∼54), 이 모든 것은 사제의 거룩한 손을 통하지 않고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제의 도움 없이 지옥 불을 면할 수 있겠으며 준비된 화관(2티모 4, 8)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제들은 세례를 통한 영적인 해산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직무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제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입었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묻혔으며(콜로 2, 12) 복된 머리의 지체가 되었습니다(1코린 12, 12).(3, 6)

순수한 사제의 영혼

성령께서 사제를 포기하지 않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사제의 영혼은 햇살보다도 더 순수해야만 합니다(6, 2).

[해설]

동방교회의 4대 교부학자로서 안티오키아 학파 중에서 가장 뛰어난 교부 요한은 크리소스토무스(金口)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훌륭한 설교가였다.

요한의 대표작품 중에서 6권으로 된 ‘사제직’(De sacerdotio)은 오늘날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며 연구하는 문헌이 되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많은 권한을 양떼를 돌보는데 사용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당시의 사제들에게 올바른 사제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사제란 무한한 존엄의 직분이다. 사제직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사제의 존재의 의미는 하느님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사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해야 하며, 백성들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인도되어야 한다.

사제는 땅 위에서 활동하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는 존재이다. 하느님의 일은 힘이나 능력이나 기술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인 사랑과 자비와 연민으로서 행해지는 일이다. 사제는 직업인이 아니라 소명인이다. 직업인은 세상에 기준을 두고 더 많은 보수를 바라며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만, 소명인은 하느님께 기준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하느님을 우뚝 세우려하며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시는 삶을 살려한다. 그래서 사제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우뚝 서 계실 수 있도록 햇살보다도 더 순수한 골고타 언덕이어야 한다.

골고타 언덕이 무엇인가? 우리의 구세주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거룩한 장소가 아닌가? 그 골고타 언덕은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그래서 사제는 골고타 언덕이다. 하느님의 아들의 거룩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사제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제는 기쁨과 희망의 영광스러운 십자가가 세워질 수 있는 골고타 언덕이어야 한다. 언덕이 있어야 영광의 십자가도 세워지고, 성모 마리아께서도 서 계실 수 있다.

사제 스스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 세상의 십자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우들에게 있어서 사제는 기쁨과 희망의 십자가가 세워질 수 있는 골고타 언덕, 성모 마리아와 의인들과 죄인들이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골고타 언덕이어야 한다.

주님! 사제가 넓고 편안한 언덕이 되게 하소서. 멀리서 사제를 바라보기만 해도 신앙의 힘이 솟아오르게 하소서. 사제의 몸가짐이나 말 한마디에서도 살아있는 믿음을 느끼도록, 그들의 삶을 굳세고 활기 있게 만들어 주소서.

배승록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대전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