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38】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아가 강해’에서

김산춘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서강대학교
입력일 2005-12-25 수정일 200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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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로와가 그린 ‘모로코에서 거행된 유다인들의 결혼식’. 아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유다인들의 결혼식에서 즐겨 불린다.
사랑의 부메랑

[본문]

이제, 신부는 사수(射手)가 멋지게 그녀에게 화살을 쏘았으므로, 그 솜씨를 찬미하며 말한다. “나는 사랑의 중상(重傷)을 입었다”(아가 2, 5)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신부는, 화살이 마음 속 깊이 관통하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 화살의 사수는 사랑이다(1요한 4, 8). 사랑이신 하느님은 자신이 “뽑은 화살”(이사 49, 2) 즉 외아들이신 하느님을, 세 갈래로 갈라진 화살촉 끝을 생명의 영으로 적시면서, 구원받을 사람들을 향해 쏘셨다. 화살촉은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의해, 화살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수도 함께 마음속으로 관통한다. 그것은 주님이 “아버지와 나는,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 23)라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그러므로 신적인 등반에 의해 고양된 영혼은, 중상을 입힌 사랑의 감미로운 화살을 자신 안에서 확인하면서, 그 중상을 자랑하고 싶어, “나는 사랑의 중상을 입었다”고 말한다. 오오, 아름다운 상처, 감미로운 중상이여! 그곳을 통해 생명은 들어왔도다. 화살의 관통이 마치 사랑을 위해 문을 연 것처럼. 신부가 사랑의 화살을 받아들이자마자, 장면은 이제 활쏘기에서 혼인의 즐거움으로 바뀐다. “그이는 왼팔로 내 머리를 받치고, 오른팔로는 나를 껴안는답니다(아가 2, 6). … 앞에서 우리는 신부가 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이, 좌우의 손으로 활시위를 메기고 있는 사수의 손 안에서 화살이 되어있는 모습을 본다. … 그분은 화살로서의 그녀를 선한 표적에로 향하게 하고, 신부로서 불멸의 영생에 참여하도록 그녀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아가 강해’ 4, 127~129

“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

[해설]

이십여 년 전, 예수회 지원자 시절, 나는 처음으로 8일간의 영신수련을 받았다. 그때,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니, 영혼은 이미 갈가리 찢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나의 무게는 나의 사랑, 어디로 이끌든지 그리로 내가 가나이다”(‘고백록’ 13, 9)라고 하셨듯이, 허황되고 거짓된 사랑들이 나를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다 팽개쳐버린 뒤였다. 나는 성인의 표현대로라면, ‘정신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고백록’ 8, 9).

피정 마지막 날 미사 때, 제대 뒤에는 예수 성심상이 있었다. 예수님은 영성체 직전에, 십자가라고 하는 사랑의 화살로 내 심장을 관통하셨다. “그래 너의 죽음을 대신하여 내가 죽었다. 이제부터는 나의 사랑 안에서만 살아가거라.”

이미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얼굴 없는 노예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분이, 또 다시 나의 무덤 위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미사가 끝난 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처음 만난 감격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 후 결코 돌이켜 본 적이 없는, 하느님을 따라가는 첫걸음이 되었다.

이 본문에서, ‘아가’의 신부는 사랑의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자 “나는 사랑의 중상을 입었다”고 외친다. 놀라운 것은 사랑의 화살을 쏜 사수인 하느님 자신이 화살(말씀)과 함께 상처 구멍을 통해 신부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또 다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사랑의 중상을 입은 신부가 화살로 변한 것이다. 신부의 몸 안에서 또 한번 육화한 말씀은, 마치 두 팔로 사랑스런 신부를 안고 있는 신랑처럼, 지금은 사수가 되어 신부를 화살이 날아온 그 출발점(존재의 근거)을 과녁(존재의 목적) 삼아 쏘아 올리는 것이다.

‘아가’의 해석 전통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에 관통되어, 자기를 초월하며 어디까지라도 하느님을 따라가는 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립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하느님의 현존의 숨결에 닿아서 그 알 수 없는 분, 무한히 초월해 계신 분을 온 마음 온 몸으로 사랑하며 따라갔던 애지자(愛智者, philosopher)였다.

우리 인생은 한마디로 ‘사랑 안에서의 만남’으로 성립한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랑 안에서 뿐이다. 사랑이 없으면 서로 스쳐지나가거나, 서로 미워하거나, 적당히 둘러대며 겉핥기식으로 사귀거나 할뿐이다.

‘아가’의 신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그런 표층(表層)적인 만남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과 일기일회(一期一會:일생에 단 한번뿐인 만남)의 사랑을 살아야할 것이다.

‘아가’는, 하느님과 이웃을 정열적인 사랑 안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 단절과 소외의 시대에, 우리를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 영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초대하는 사랑 노래 중의 사랑 노래이다.

김산춘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서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