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43】Ⅲ 검색과 잠복시대/3. 기리시탄 잠복신앙/5) 바스챤의 유언, 6) 장례

박양자 수녀
입력일 2005-12-04 수정일 200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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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레 기리시탄 마을 시츠. 산위에 올라가 로마로부터 신부가 타고 올 흑선을 기다렸다.
잠복시대 신자 죽으면 스님이 입회해야 입관

5) 바스챤의 유언

바스챤은 처형되기 전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콘페소르(고백신부)가 큰 흑선을 타고 온다. 매주라도 콘삐산(고백)을 할 수 있다. 어디서라도 큰 소리로 기리시탄 노래를 부르며 걸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 길에서 젠쵸(외교인)을 만나게 되면 그가 길을 양보하게 된다.” 이 예언은 250년간 잠복 기리시탄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소토메(外海)의 시츠(出津)에 가다 우에몬이라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기도하며 신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바스챤의 유언대로 7세대에 이르렀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흑선이 올 날도 멀지 않지. 콘페소르가 와서 콘삐산을 듣고,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날이 가까이 온다. 기도와 가르침도 큰소리로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 날이 가까웠다고 하지만 나는 웬 불행인고. 콘페소르를 만나서 콘삐산도 못하고 죽지만, 젊은 너희들은 그 날을 볼 수 있게 될 꺼야.”

어느 날 큰 흑선이 나타났다고 사람들이 야단이었다. 가다 우에몬은 활 같이 굽은 몸을 양손의 지팡이에 의지 하여 작은 언덕에 올라 바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 이것이야 말로 바스챤이 예언한 흑선이야. 그렇지만 나는 콘페소르를 만나서 콘삐산을 하기까지 살지 못하겠구나”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865년 과연 오우라(大浦) 천주당에 로마에서 신부가 왔다는 소문이 기리시탄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3월17일 이것을 확인하려고 우라가미(浦上)에 사는 이사벨라 부인과 그 가족과 친척들이 목숨을 걸고 오우라 천주당에 갔다. 거기서 산타 마리아님도 만났고 콘페소르도 만났던 것이다.

6) 장례

임종하는 자가 있으면 죠가다(帳方=최고지도자)를 위시하여 지도자들은 병자를 지키며 ‘죽음의 기도’ 또는 ‘최후의 기도’라는 임종 자를 위한 기도를 한다. 숨을 거두면 완전통회의 기도 63편과 예수 그리스도님에게 사망을 알리는 기도를 한다.

잠복시대에는 막부의 엄중한 규제로 스님이 입회하지 않으면 납관할 수가 없다. 기리시탄들은 어쩔 수 없이 스님을 불러 경을 하도록 하고 자기들은 스님이 있는 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다른 방에서 불경을 없애는 기도를 한다(經消). 스님이 돌아가고 나면 관을 열고 불교식의 모든 것을 꺼집어내고 기리시탄적인 것으로 바꾼다. 머리 위에는 빨간 조각 천(천국으로 간다는 뜻)을 놓고, 하얀 종이로 잘라 만든 십자가를 귀와 옷섶에 넣어준다. 양쪽 어미 발가락으로 십자가형을 하고, 양쪽 어미 손가락도 십자가를 만들어 양손을 짝 지워 놓는다.

출관 때는 “아베 마리아” 신호를 하면 참가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면서 행렬을 한다. 기리시탄들은 토장(土葬)을 해 왔지만 불교식으로 화장을 하였다. 화장을 하지 않을 경우 기리시탄이라는 의심을 받아 조사를 받게 되었다. 묘비도 조사하여 기리시탄 표시가 있으면 심문을 받기 때문에 불교식으로 계명을 넣고 이름과 죽은 연월일을 새겨 비를 세웠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구로사키(黑崎) 기리시탄들은 불교식의 비석을 하고 있지만 세례명을 꼭 새겨 넣고 있었다. 이 지방 기리시탄들의 의지적 신앙심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박양자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