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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106) 우리 시대에 성인이 되는 길 1

입력일 2005-09-04 수정일 200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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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드러나지 않아

구약 시대의 성인이란 십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미했다. 복음에서는 십계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계명으로 압축한 것,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신명 6, 5 마태 22, 37∼39)는 것을 깊이 이해하여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려고 애를 쓴 사람들이 성인의 대열에 들었다.

신약 시대의 성인이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했다. 당시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다른 생각과 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들과 멀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과의 이별이나 죽음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선포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스도인 숫자가 불어나면서 당시 사회 내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에 외적으로나마 그리스도인 명칭을 가지는 것이 좋은 조건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그리스도인을 성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인이 되려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해내야만 했다. 가장 먼저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순교자였다. 사막에서 고독 속에서 영혼의 정화를 위해 애쓴 수도자들도 여기에 속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처럼 가진 것을 다 나누어주고 청빈 속에서 하느님 안에서 모든 존재와 일치하여 사랑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튀링겐의 엘리사벳이나 빈첸시오 아 바울로처럼 가난한 이웃의 아픔과 궁핍을 도와 주려고 애를 쓴 사람들도 여기에 속했다. 켄터배리의 안셀모나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구원의 진리를 밝히려고 정력적으로 전 생애를 투자한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패트릭이나 보니파시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처럼 복음 전파에 열중한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다양한 삶에 공통적인 것은 바로 일상적인 것을 뛰어 넘어 어떤 특별한 것을 이룩한 점이다.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느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일상적인 것을 벗어나서 특별한 업적을 이룩했다. 이것으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었고 세상의 빛과 모범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최근까지 성인들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다. 우리는 아직도 모범적인 뛰어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한편 현대인은 새롭고 경이로운 일들을 즐겨 찾는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특별히 뛰어난 것으로 선전하는 것에 불신을 품고 있다. 특별한 것으로 선전되는 부산한 것들 안에 든 허망함을 자주 체험하고 깊이 보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학문과 기술 그리고 사회 구조 등의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정보의 양이 엄청나서 어느 한 개인이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수행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뛰어난 인물들이 차지했던 자리에 함께 일하는 그룹, 즉 팀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특별나게 드러내지 않지만 개개인 모두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 각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것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전체를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시대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특별난 것은 물러나고 개인은 드러나지 않지만, 각자 안에 전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깨어나고 자신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