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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101) 정의

입력일 2005-07-31 수정일 200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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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관심가져야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하고 정체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정의 실현의 결핍이다. 평화와 번영은 오직 정의가 실현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사랑도 정의가 있는 곳에서 가능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일 중 하나다.

세상 안에 분쟁과 갈등이 끊임없는 이유도 정의가 올바로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갈등과 싸움은 건강한 노동의 수고를 스스로 하지 않고 남이 고생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데에서 발생하고, 정의로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불만을 품는 데에서 발생한다.

정의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해당된다. 잘 훈련된 개나 말의 행위들이 종종 정의롭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그와 함께 사는 사람이 가진 정신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인격체로서 자신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고유한 정신적 가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과르디니는 이것을 정의에 대한 요청으로 보고 있다.

정의란 인격적 존재인 인간이 세계와 자신에 대해서 아무의 침해도 없이 고유한 판단과 사고를 가질 수 있는 것과, 자신이 판단의 주인이 되어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질서를 의미한다. 정의는 또한 자신의 양심적 판단에 따라 세계 안에 참여하여 함께 일해 나가는 것, 다른 사람들과 우정, 협동, 사랑 등의 관계를 가지는 것, 즉 존재의 질서를 의미한다.

이러한 존재의 질서가 정의이고, 이것을 원하고 실현되도록 노력해 나가는 사람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과르디니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섭리에 의해서 정의가 개인과 사회 안에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종종 참된 정의로부터 멀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완벽한 정의의 실현은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정의가 이 땅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실현되도록 협조할 수 있다. 마음의 눈을 열어 이웃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가능할 것이다.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서 예수님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있어서 누가 주님의 지극히 작은 형제들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외된 사람들, 배고프고 무기력한 사람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측정된다.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