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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기 새교황의 사목적 과제들 / 6. 생명윤리의 수호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6-26 수정일 200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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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문제 인식, 일반인-교회 편차 심해

“생명수호 노력 더욱 필요한 시점”

유전자치료 등 윤리문제 대처 위해 교회도 과학적 전문성 뒷받침 돼야

가톨릭신문사가 한국의 가톨릭 신학자 100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후임 교황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37명(18.5%)이 「생명윤리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 문제는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이라는 문제와도 깊이 연관된다. 즉, 가톨릭 교회가 제시하는 전통적인 윤리적 가르침들이 세속 사회 안에서 설득력을 급격하게 잃어가고 있으며, 특별히 생명윤리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더이상 교회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낙태, 피임 등의 전통적인 윤리적 가르침들 뿐만 아니라 갈수록 교회의 입장과 유리되고 있는 동성애, 안락사 문제들, 그리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 새롭게 제기되는 생명윤리 문제들에 있어서는 더욱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가톨릭교회가 6월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치렀던 국민투표, 「배아 전쟁」은 결론적으로 교회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교회는 인공수정에 대한 법적 규제의 완화를 시도했던 이 국민투표를 가톨릭의 승리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인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은 국민투표 직후 바티칸 라디오와 가진 회견에서 『우리는 이기려고 싸우지 않았고, 우리는 승자도 아니다』며 『우리는 다만 가톨릭 신자로서 스스로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이것은 단지 신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수호를 위해 싸우는 것은,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적 신념에 따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생명을 수호해야 하는 의무는 나아가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 시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나아가 생명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더욱 특별한 생명 수호의 소명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이러한 소명은 더욱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만연한 윤리 논쟁들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쟁은 그야말로 지구적이다. 이미 6월 중순 전세계적 화제가 됐던 이탈리아의 「배아전쟁」 외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독일의 게르하르트 쉬레더 총리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고 독일 가톨릭교회는 이에 대해 즉각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 한국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두 번째 배아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교회의의 성명서가 나오고,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황박사와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 스페인에서는 6월 14일 상원에서 교회가 반대하는 동성결혼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이어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세 번째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국가가 될 우려가 있다.

- 캐나다 의회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더욱 근접하고 있는데, 이미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각 지방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동성결혼을 할 수 있는 실정이다.

- 벨기에 의회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이어, 최근에는 동성애자 커플의 입양까지 허용하는 조치를 추진 중이다.

- 영국에서는 가톨릭과 성공회가 공동으로 격렬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 의회에서 논쟁 중이다.

- 가톨릭이 압도적인 콜롬비아에서는 안락사 허용 법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더욱 복잡해진 도전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된 1978년 10월은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아직 채 석 달도 되지 않았던 때이다. 미국에서는 카렌 앤 퀸란 여사가 재판을 통해 인공호흡기를 뗀지 2년째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시험관 아기가 처음으로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도 3년이 지나서였고, 퀸란 여사가 결국 폐렴으로 죽은 것은 4년이 지나서였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임 교황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만연한 생명윤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100만명 이상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고, 테리 쉰들러 쉬아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안락사 문제를 둘러싼 「죽을 권리」에 대한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 배아 복제 연구는 전에 없는 심각한 생명윤리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가톨릭생명윤리센터(The National Catholic Bioethics Center)의 존 하스(John Haas) 소장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됐을 때, 우리는 이미 낙태나 안락사 문제에 대한 대처를 하고 있어야 했다』며 『그러나 후임 교황이 직면하고 있는 생명윤리 문제들은 훨씬 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전문성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간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전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수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유전자 치료술은 부모의 희망에 따라 유전자적 특성이 강화된 맞춤 아기의 탄생을 겨냥하고 있다.

하스 소장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다 깊은 분자 생물학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아메리카 가톨릭대학교 법학과 헬렌 알바레 교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 교황은 인간의 육체를 강화하고, 질병을 치료하려는 유전자 치료에 포함된 엄청난 윤리적인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주교회의 생명문제 담당 대변인을 지낸 헬렌 교수는 또한 안락사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특수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문제는 이미 해묵은 것이고, 새롭게 등장한 윤리적 논란은 음식과 물까지 중단하는 문제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제기된 새로운 생명윤리 문제들은 새 교황의 윤리적 과제들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물론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원칙이야 분명하지만, 생명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신학자들이 이제 막 검토하기 시작한,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들이다.

전임 교황은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연구하기 위해서 생명학술원을 설립했지만, 이제 새 교황은 이 학술원을 보다 더 전문적인 기구로 확충하고 강화해야 하고, 더 많은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