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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기 새교황의 사목적 과제들 / 3. 세속 문화와 전통적 교회 가르침 충돌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5-15 수정일 200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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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안락사·배아복제 등 윤리관 폐해 심각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된 기준”

상대주의 경향으로 교회전통 위협

복음에 대한 충실성으로 극복해야

가톨릭신문사의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새 교황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노력과 함께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이 꼽혔다. 모두 100명의 가톨릭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각각 40명(20%)이 이 두 가지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세속화, 교회전체의 문제

그리스도교적 뿌리를 지닌 서구사회이면서도 극도로 세속화된 오늘날 서구 지역, 즉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이 지닌 이 문제는 이제 서구 사회의 문제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즉, 서구 문화는 이미 세계화된 지구촌에서 서구, 비서구 지역을 막론하고 확산됨으로써 서구 문화와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 문제는 어느 한 대륙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교회 전체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세속화된 서구 문화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 교회의 가르침이 빚어내는 충돌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들이 서구 사회와 문화 안에서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 현상을 지칭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낙태, 안락사, 동성애, 피임 등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서구에서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가르침들이 더 이상 일반 세속은 물론, 교회 내의 가톨릭 신자들에게서조차도 이해되거나 수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윤리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도,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은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적 경향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가장 큰 사목적 과제 중의 하나로서, 교회의 정통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들을 확고하게 수호하는 일은 향후 보편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노고와 고민이 동반될 것으로 보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콘클라베가 개막되기 전 4월 18일 거행된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강력한 도전으로 간주했던 상대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교황은 현대 사회의 상대주의적 경향에 대항해 도덕적, 윤리적 원칙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위 「교리」들을 만났는가, 얼마나 많은 이념과 사상적 유행들을 만나야 했던가. 매일 매일 새로운 분파들이 생겨나고,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인간에 대한 기만, 오류로 이끄는 간교라고 지목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교황은 이처럼 단호한 비판에 이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확신들이 얼마나 자주 『근본주의로 매도되는가』를 개탄했다. 그럼으로써 결국, 모든 종류의 「교리」를 임의대로 추종하는 상대주의적인 태도만이 첨단을 걷는 유행인 것처럼 보이게 됨을 지적했다.

교황이 『오직 변덕스러운 「자기 자신」만을 남겨두고, 아무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의 독재』라고 부른,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그 참된 기준으로 제시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상대주의에 대한 강경한 입장 표명은 일부로부터 적대적인 대응을 불러왔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지는 4월 20일자에서 『라칭거 추기경의 흑백 논리는 사이비』라며 『그가 교회가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윤리적 절대성은 공허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리는 만들어진다?

뉴욕 타임즈는 4월 19일자에서 교황의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두고, 「비타협적」(uncompromising)이라고 평하고, 그는 이념적으로 순수한 작은 교회를 원하는 「극보수주의자」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평가에 반해 다른 이들은 절대적 진리와 가치의 수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지지표를 던졌다. 성안드레아 대학교 철학교수인 존 할데인 교수는 한 신문에서, 라칭거 추기경의 사상의 기반은 『그리스도교의 계시 진리가 지상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영원한 구원으로 이끈다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칭거 추기경이 지적한 현대 사상의 오류는 『진리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사고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인간이 죄인이고, 잘못하면 영원한 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할 때, 회개하고 쇄신하는 것보다는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하기를 원하는 심리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줄리아노 아마토 전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의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라칭거 추기경의 강론은 교회가 이제 보수적, 심지어 반동적인 교황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상(理想)이 없는 사회의 위험성에 대해서 가르친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과 확고하게 일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대주의적 윤리관의 폐해

이러한 상대주의의 폐해는 윤리적인 면에서 가장 크게 두드러진다. 낙태, 안락사, 동성애, 피임, 나아가 생명과학의 발달로 새롭게 대두된 배아 복제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생명윤리 문제들은 이제 각자의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서 선택의 문제로 간주되기 일쑤이다.

낙태는 여성의 선택권 문제로 격하됐고, 안락사 문제에 있어서는 죽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지역에서 힘을 얻었다. 동성애는 이제 성적 취향의 문제로서 제3자가 간섭할 일이 아니며, 피임 문제는 인구 조절에서 시작해 안락한 생활을 위해 피해야 할 가정의 정책으로 확산됐는데, 여기에서는 특히 콘돔 사용이 에이즈 예방에 필수적이라는 인식과 콘돔이 아니라 성적 절제를 근본적인 치유책으로 강조하는 교회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교회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입장들이 너무도 일반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지역의 주교들은 2004년 10월 잉글랜드에 모여서 유럽 가톨릭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다.

10월 7일부터 나흘 동안 열린 이회의에서 교황청 주교성 장관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유럽의 문화, 종교적 변화는 우리에게 사목적 응답을 촉구한다』며 그 열쇠는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한 충실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개막연설을 한 유럽주교회의(CCEE) 의장 아메데 그랍 주교는 유럽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톨릭교회는 많은 영적 선택사항, 또는 「가능성」 중의 단지 하나일 뿐』이라며 『많은 유럽인들은 교회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가톨릭 전통은 여전히 준수되지만 그 뿌리는 잊혀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주교회의는 2004년 3월 발표한 「우려와 희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현재 세대는 종교적 양육을 경험하지 못했고, 종교적인 삶의 모델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어 『그리스도교적 언어와 상징, 사고방식은 공적 삶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며 『종교와 윤리는 사회 안에서 청중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앞서 언급한 4월 18일 강론에서 결론적으로 말했다. 세속주의적 정신 상태의 출발점인 상대주의는 스스로 참된 인간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인식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믿음으로써 도그마의 일종이 돼버렸다. 하지만 교황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신이 사라지면, 인간의 존엄성 역시 사라져 버린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