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특집]각국 정부 및 교회 추모 표정

입력일 2005-04-10 수정일 200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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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

“멈춰다오, 사라져간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니”

5만명 젊은이들의 기도·노래소리 울려퍼져

동서냉전 종식·타종교와의 일치위해 최선

『우리를 몰고 온 파도에 출렁이며 주위 만물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싶구나. 「멈춰다오, 사라져간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니」』 시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집 「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따뜻한 손, 2003)에서 읊은 「경이로움」의 한 구절이다.

전 인류가 텔레비전에서 지켜보던 죽음이 하나 있었다. 그리스도처럼 높다랗게 십자가에 전시되던 죽음에는 못 미쳤지만 그이는 50시간의 단말마를 마지막 제물로 주님께 올리고 떠나셨다. 관뚜껑 못질할 때 사람됨이 드러난다지만 그분은 살아서 못지않게 죽어가면서 전 인류를 매혹하는 섬광을 내셨다.

이탈리아 국영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48시간 내내 그분의 병세와 일생의 업적과 여행과 가르침을 보여줄 만큼 찬란한 한평생이었다. 임종 전날 저녁에 라테란 대성당에서 그분의 선종을 비는 미사에는 챰피 대통령과 베를루스코니 수상과 모든 정당 수뇌부와 전각료가 참석할 만큼 이탈리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바로 이틀 뒤 정권의 사활을 거는 단체장 선거가 있는데도 교황의 임종을 보겠다고 모든 정당이 선거운동을 중지하였다. 더군다나 젊은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노인의 종말은 정말 행복하였다. 금요일 저녁,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5만명의 젊은이들의 기도와 노래가 들려오자 교황님은 어렵사리 손짓과 목청을 짜내어 『자네들을 기다렸는데 와주었구먼. 고맙네』라고 하셨단다. 먼데 간 자식이 도착하기 전에는 눈을 감지 못하는 늙은 어버이처럼 말이다.

토요일 저녁 광장 인파는 10만이 넘었다. 젊은이들의 로사리오 기도를 잠시 멈추게 하고 산드리 대주교가 『우리 어버이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는 발표를 하는 순간 광장에 깔리던 엄숙한 침묵은 텔레비전 화면 앞에 있던 전 인류의 가슴에 찡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소다노 추기경이 『깊은 구렁 속에서 부르짖나이다』라는 시편 129편의 연도를 선창하였는데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라는 끝맺음에는 온광장이 박수로 뒤덮였다. 『생명은 없어지지 않고 변할 따름』임을 믿는 신앙인들의 모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이 교황에게서 베드로보다는 바울로의 모습을 더 많이 본다. 그는 인류사의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분이 교황이 되기 전에 쓴 「반대받는 표적」을 번역하였고(1979 성바오로출판사) 교황으로서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1981 CCK)를 번역한 적 있는 필자로서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이라고 한다. 「달리는 그리스도교라고도 일컫는다」라는 회칙의 선언(10항)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을 명분을 얻었다. 지금 로마 시내에 도배되다시피 붙어 있는 교황님의 부고, 전지 크기로 된 그분의 사진에는 Un Buon Uomo(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4월 3일자 신문 머릿기사에 「세계를 바꾼 교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과연 동구권이 현실사회주의를 스스로 포기하여 동서진영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돌리지 않은 정치학자는 없다. 북반구 부강국들과 남반구 빈국들을 번갈아가면서 그 간극을 메우려고 무던히 노력한 그분의 노고를 유엔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게 막으려고 고뇌하고 소리치고 침략자들을 저주한 그분의 쇳소리를 인류는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다.

4월 3일 아침 성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연미사를 마치고 필자는 교황궁 3층의 클레멘스홀로 안내되어 올라갔다. 고인에게 염을 하고 칠성판에 눕히는 기도를 함께 올렸다,

교황청 고위성직자들과 교황청 주재 대사들이 함께. 거기 노교황은 파킨슨병으로 꺾였던 고개를 여전히 모로 돌리고 주교복을 차려입고 누워 있었다.

그의 굳게 감긴 눈이며 그 많은 십자가를 지으며 우리를 축복하던 손은 일동에게, 특히 머지않아 시스티나 경당에 들어가 콘클라베를 이룰 이들에게 다음 구절을 소리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한번 죽는 것은 인간의 운명, 그 뒤에는 심판이 따른다! 최후에 찾아드는 명백함, 그리고 빛. 역사의 명백함, 양심의 명백함, 부디 잊지 말기를! 모든 것이 그분의 눈앞에서 벌거숭이로 명백하게 드러났느니』(「내 안에 그대 안식처 있으니」「에필로그」에서).

▩해외 통신원이 전하는 교황 선종 관련 소식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경용 수사(예수회)

“필리핀 국민들의 거룩한 영웅”

교황의 서거 소식에 따라 마닐라시 전체에서 조종이 울렸고 각 본당마다 조기가 게양됐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특별 메시지를 발표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에 국민 전체는 비통함과 상실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그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거룩한 영웅이었으며 정의와 도덕 희생의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일깨워주었다』고 말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이어 『전 세계를 잇는 위대한 다리 역할을 해준 교황을 인류는 그리워할 것』이라며 『약자들과 억압받은 자들은 경외스런 카리스마로 평화와 사랑을 제창했던 그들의 영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주교회의를 비롯해 교회내 관계자들은 평화의 사도로 전 세계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데 기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업적을 기렸다.

필리핀 국민들은 특별히 1981년과 1995년 두 차례 필리핀을 방문한 교황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을 처음 방문한 1981년의 경우, 마르코스 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교황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를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정의와 평화를 강조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 고유의 인권과 기본권은 침해될 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언론인은 마르코스의 독재 정권기간 동안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외에는 그 누구도 공식적인 방문 자리에서 그만큼 솔직하게 인권 보호를 언급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로마 바티칸에서 변종찬 신부(서울대교구, 유학)

“희망 외에는 모든 것을 잃었다”

4월 2일 밤 9시, 베드로 광장에 모여든 신자들은 교황님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이미 희망은 없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보를 들은 신자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든 신자들. 10만명을 헤아렸다.

침묵을 깨고 들려온 비보.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 21시 37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흐느낌과 굵은 눈물…적막의 순간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 앞에 선 사람들처럼. 교황님이 사랑하셨던 젊은이들은 더 크게 흐느꼈다.

로마인들은 교황님을 잃은 슬픔을 「커다란 아픔」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는 딸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희망 외에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22시 30분 경 베드로 성당의 종은 자신의 목소리로 계속 교황님의 사망 소식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베를루스코니 수상은 3일간의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하였고, 치암피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그 분의 밝고 맑던 눈망울을 자신의 마음 안에 담고 살아갈 것』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밤은 깊어갔지만, 사람들은 베드로 광장을 떠날 줄 몰랐다. 젊은이들은 기타를 치면서 성가를 불렀고, 많은 이들은 계속해서 교황님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4월 3일 10시 30분 예정대로 소다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베드로 광장에서 미사를 시작했다. 광장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모습은 로레토 교구장과의 인터뷰였다. 주교님은 교황님께서 성지를 방문하셨을 때의 모습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로마시는 장례기간을 전후해서 약 200만 정도의 순례객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 태세에 들어섰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영길 신부(안동교구, 유학)

“의인을 위한 기도 당연한 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임종 소식이 알려지자 모든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바티칸 소식을 전해주며 교황의 삶을 되짚었다. 그분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이들의 애도와 기도를 하느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는 듯 파리 시내에서는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신자들은 선종 소식이 알려진 뒤 시시각각 급박하게 전해지는 뉴스를 접하면서 주교좌 성당과 지역 성당을 찾아 기도하기 시작했고, 이슬람교 신자들까지 『의인을 위해 하느님께 비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면서 교황님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현지 신자들은 『그분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며 교황직을 시작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교황이 『신앙인이기에 신자답게 살며, 온갖 인간적인 장벽을 뛰어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으며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파리의 신자들은 『진리를 선포하려 무려 104차례나 해외여행에 나서신 교황임을 잊지 않는다』며 프랑스인들에게 『일생을 참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신 분』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한 신자는 교황이 특별히 『삶의 상처를 입고 사는 가난한 이, 소외당한 이 특히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신 분』으로 기억했다. 또 다른 신자는 『교황님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가장 귀한 선물인 생명의 지킴이로 상기될 것』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를 유린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간에 과감하게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인간의 가치를 물질의 과다에 따라서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셨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