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특집]콘클라베 열리는 시스티나 경당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4-10 수정일 2005-04-10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콘클라베가 열리는 동안 추기경들이 머무는 「마르타의 집」 전경.
유일한 소통수단은 ‘연기’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모여들면, 전세계의 눈은 각종 예술품과 역사적인 유물들로 가득한 시스티나 경당으로 쏠린다. 일단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소통 수단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 뿐이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간신히 보이지만, 각국에서 파견된 사진기자들의 망원경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자리 좁아 비밀투표 애먹어

시스티나 경당이 세워지고 미켈란젤로에 의해 내부 장식이 모두 마무리된 1541년 이후에도 모든 콘클라베가 시스티나 경당에서 열린 것은 아니다.

교황 비오 7세는 1800년 베니스에서 교황으로 선출됐고, 이어진 4번의 콘클라베(1823∼1846)는 로마의 퀴리널궁(Quirinal Palace)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한때 교황의 여름 별장이었고, 지금은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이다.

시스티나 경당의 명성과 각종 예술품들은 교황선거가 열리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시스티나 경당에서의 콘클라베에는 두 가지 조그만 문제가 있기는 하다.

첫 번째 문제는 좁은 공간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와 2세를 선출할 때 추기경들은 자리가 좁아서 비밀투표를 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불평을 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연기의 색을 구별하기가 조금 어렵다는 것이다. 시스티나 경당에는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특수 난로와 굴뚝이 있다. 교황이 선출되면 투표용지를 태운 흰연기가, 선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젖은 짚, 나중에는 화학물질을 태워 검은 색 연기를 피워 올린다. 그런데 문제는 공해와 대기 상태, 날씨 등에 따라서 연기색을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 교황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베드로 광장에 언제 나가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바티칸 라디오에 의존하곤 했다.

추기경 ‘마르타의 집’에 머물러

한편 추기경들은 콘클라베 기간 동안 바티칸시 끝에 있는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 머물게 된다. 추기경들은 여기서 매일 두 번 열리는 선거를 위해 버스로 시스티나 경당을 왕래한다. 이 집은 5층으로 된 건물로 바티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건물형태(Domus)인데, 평소에는 바티칸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묵는다. 콘클라베 기간 동안에는 131개의 방이 모두 비워지고 추기경들만 머문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서 위층에 있는 추기경들은 의무적으로 창문 셔터를 내려야 한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들은 일체 접근이 금지되며, 다만 이탈리아인 사제 한 명과 5명의 수녀, 그리고 28명의 평신도가 추기경들을 돌본다.

전에는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들은 시스티나 경당 옆의 좁은 방에서 코트를 입고 잠을 자야 했는데, 1996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추기경들이 좀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박영호 기자